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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수진 Oct 23. 2021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 되던 날에

 

 

 누군가 언제 가장 외로웠느냐고 묻는다면, 내겐 단번에 떠오르는 하나의 장면이 있다. 여섯 살 난 나의 아이와 커피숍 구석에 앉아 고개를 떨구고 있다. 말 그대로 닭똥 같은 눈물이 무르팍에 뚝뚝 떨어져 먹물처럼 번진다. 옷깃으로 아무렇게나 얼굴을 문지르며 닦아내도, 한번 터진 눈물은 쉽게 멈추지 않는다. 얼음이 녹아가는 커피잔에는 서러운 물방울이 맺혀 있고, 케이크는 손도 대지 않은 채 그대로다. 안절부절못하는 아이 옆에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한없이 우는 안타까운 내가 있다.

 그날은 나의 생일이었다. 남편과 아이와 함께 소박하게 보내던 생일에 멀고 먼 제주까지 와있는 게 화근이었다. 나의 엄마가 자신의 딸의 생일을 완전히 까먹고 기억하지 못했을 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 되었다.




 후텁지근하게 더워서였을까, 아니면 가끔 오는 친정의 방 한편이 유난히 낯설어서였을까. 이번 방문은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불편했다. 내 아이는 엄마에겐 소중한 첫 손녀지만 우리는 늘 멀리 떨어져 있었다. 반면 친정 바로 옆집에는 동생네가 산다. 조카는 어린 시절부터 엄마가 업어 키웠으므로 훨씬 많은 추억이 있다. 그 사실이 항상 마음을 퍼석하게 했다. 멀리 사는 게 누구의 탓도 아닌데 서운함이 그칠 줄 모르고 피어났다 사라졌다.


 어느 날 밤, 아이가 망설이며 말을 꺼냈다. 외할머니를 너무 좋아하는데, 자신을 반가워하지 않는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친정에 머무는 내내 묘하게 불편했던 이유가 바로 이거였구나. 하긴 이런 말을 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엄마는 내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도 5초를 못 넘기고, 조카와의 에피소드를 늘어놓기 바빴다. 아이를 조카의 이름으로 틀리게 부르고, 이런 건 언니가 양보해야지, 동생에게는 이렇게 해야지 하며 내 신경을 긁기 시작했다. 나는 슬슬 짜증이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기분 탓이기를 바랐던 마음이 질투와 서운함으로 뒤엉켜 스멀스멀 모습을 드러냈다. 여름날 끈적이는 땀처럼 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덮고 엄청난 불쾌감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날부터 쉬이 잠들지 못하는 밤이 이어졌다.


 공교롭게도 친정에서의 마지막 날이 내 생일이었다. 거창한 생일파티를 바란 건 아니었다. 미역국 정도는 끓여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는 마음은 있었으나 '생일 축하한다'라는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항상 떨어져 있었으니 이번엔 얼굴을 보며 다정한 인사를 건넬 수 있으리라.

 그러나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축하한다는 말은커녕 잠시 마트에 간 올케를 대신해 조카와 앞마당에서 놀아주고 있었다. 아침 뭐 먹을래, 대충 있는 걸로 간단히 먹자는 엄마를 보고 있자니 단단히 묶어 두었던 끈 하나가 탁 하고 풀려버렸다.

엊그제 저녁식사 때, 지난달에 있었던 동생의 생일에 간 식당이 비쌌지만 굉장히 맛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좋은 시간이었겠네, 맞장구를 치며 며칠 뒤에 있을 내 생일엔 무얼 먹으면 좋을까 살짝 고민이 되었다. 부모님이 좋아하는 몇 개의 식당이 떠올랐고 그중 하나를 예약해 둘 참이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구나 하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동생의 생일로부터 한 달 뒤에 있는 내 생일은 완전히 까맣게 잊혀 있었다. 그간 엄마가 생일을 잊는 건 종종 있는 일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자기 자식을 힘겹게 낳은 날을, 새 생명을 만난 벅찬 순간을 다 잊어버릴 수가 있단 말인가.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기억력이 퇴화된다고 해도 이건 말이 되지 않는다. 애당초 나라는 사람이 엄마에게 큰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 하는 비약에까지 이르자, 1분 1초도 친정에 있을 수가 없었다. 외로움은 순식간에 온 몸을 휘감았고, 입에 못된 말을 일발 장전해 총알처럼 쏴댈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러나 내 아이 앞에서 싸우고 싶지 않았다. 이게 싸울 일은 아니잖아? 일종의 해프닝이잖아. 남들이 보면 사소할 일에 이렇게 불같이 화가 차오르는 스스로가 웃기고 비참했다. 마음 어딘가에 구멍이 하나 뻥 뚫려 그 사이로 찬바람이 쌩쌩 드나드는 기분이었다. 너무 춥고 쓸쓸한데, 외롭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저 입술만 꽉 깨물고 그 길로 도망치듯 밖으로 뛰쳐나왔다. 어쩌면 나는, 어린날의 나로부터 1센티도 자라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출처- 위플래쉬


 첫째이기 때문에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부모의 사랑과 칭찬들. ‘맞벌이를 하느라 바빴기 때문에’라고 애써 위로해봐도 생일날 축하받은 기억이 많지 않다. 습관처럼 지나가버린 지난 생일 속의 어린 내가 스쳐 지나간다. 나는 그 수많은 어린 나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축하받고 싶어요’라는 말 한마디 꺼내보지 못한 조용하고 얌전하고, 싫은 내색 하지 않는 작은 아이가 저 편에 서 있다. 아이와 눈이 마주친 순간 깨닫는다. 실은 좀 더 사랑받고, 칭찬받고, 맘껏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구나. 오랜 시간 울음을 삼키던 외로운 아이가 저곳에 우두커니 서 있는 거구나.


 도망치듯 달려온 카페 구석에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뭉개지는 목소리로 "엄마가 내 생일도 기억 못 하고오오" 하며 울었다. 그럴 수도 있지, 라는 말을 달고 사는 남편이 오늘은 "아이고, 서운했겠다. 나라도 있었으면 좋았을걸" 한다. 다정한 말에 더욱 서러워져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남편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도 울먹이고 있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이게 그렇게까지 울 일이냐며, 아이를 데리고 그렇게 휙 나가버리면 어쩌냐고 타박이 이어진다. 대답 없이 전화를 끊고 옆에 서 있던 아이를  끌어안았다. 이 자그마한 아이가 21년이나 차이나는 엄마의 마음을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아이는 나의 등을 토닥이며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엄마, 그래도 엄마의 엄마잖아. 전화를 그렇게 끊으면 안 돼."


 아이를 안고 나의 엄마에 대해 생각한다. 겨우 26살이란 나이에 주어진 엄마라는 인생을, 그저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부대끼고 버거웠겠지.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까지 울 일이냐 타박하는 엄마의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다. 있는 힘을 다해 너를 키워냈는데, 고작 생일 하나 기억 못 했냐고 내 인생 전체를 비난하는 것이냐 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지만 사실은 상처를 내며 살아왔던 걸까. 가족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울타리였다가, 때때로 제일 아픈 장소가 된다. 나는 되도록 멀리 도망치고 싶었다. 이기적인 마음인걸 알면서도 엄마라는 말이 최대한 닿지 않을 곳으로 날고 날아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누나가 좋아하는 식당을 예약해뒀으니 기분이 좀 나아지면 그곳으로 오라는 동생의 전화를 받자, 조금씩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시시콜콜 묻지 않고 가족 모두를 한데 모아 식사자리를 만들어 준 배려가 고마웠다. 다 같이 노래를 부르고, 올케가 준비한 커다란 케이크의 촛불을 끄고 나니 자연스럽게 모두들 원래의 분위기로 돌아왔다. 내가 바랐던 축하는 이런 평범하고 사소한 것이었다.


 아이는 이제 화해하라며 내 손과 엄마의 손을 포개어 맞잡게 했고, 우리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몇 잔의 소주를 들이켜는 엄마의 맞은편에서 앉아 맥주를 홀짝이고 있었다. 깜빡해서 미안하다는 엄마의 사과와 괜찮다는 나의 대답이 쑥스럽게 이어졌다. 그렇게 서운했냐는 엄마의 말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오랜 시간 가족의 형태를 띠고 살아왔어도 우리는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살면서 쌓아둔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말로 설명한들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는 일이다.


 조용히 앉아 있는 내게, 취기가 살짝 오른 엄마가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건넨다.

 "생일 축하한다, 우리 딸."

그제야 비로소 나는 엄마로부터 진짜 축하를 받았음을 깨달았다. 더 이상 해마다 돌아오는 나의 생일이 슬프지도 안타깝지도 않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갈 짐을 정리하고 밖을 내다보니 별이 쏟아져 내릴 듯 무수히 떠 있었다. 오늘 내가 하염없이 흘렸던 눈물들이 하늘에 올라가 별이 된 것이 아닐까 잠시 생각했다. 나는 후련한 마음으로 앞마당에 서서 오래도록 별을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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