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빛톡톡 Jun 18. 2020

내가 핸드폰을 끄지 못하는 이유.

죽음과 트라우마.

아들러 이론을 바탕으로 한 책 <미움받을 용기>에서는 트라우마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받은 충격-즉 트라우마-으로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경험 안에서 목적에 맞는 수단을 찾아낸다.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하는 것이다.” 라며 프로이트의 트라우마 이론을 부정한다. 개인적으로 <미움받을 용기>를 재미있게 읽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나에겐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며, 그것은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


대학교 3학년, 22살. 부모님 짐을 덜어들이고자 수학 과외를 2-3개씩 하던 때였다. 그날도 평소처럼 학교 수업을 마치고 아현동에 있는 고등학생 과외를 하러 갔다. 수업에 방해되지 않도록 핸드폰도 꺼두었다. 두 시간이 지난 뒤, 문을 나서고, 버스를 탔다. 핸드폰을 켰고, 작은 아빠, 동생, 엄마에게서 부재중 통화가 수십 통이 와 있었다. ‘엄마나 동생은 그렇다 치더라도 작은 아빠가 왜 이렇게 전화를 많이 했지?‘ 순간 불안감이 엄습했다. 문자를 확인할 틈도 없이 동생에게 전화를 했고, 수화기 너머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지난 몇 년간 동생 눈물을 본 적이 없던 터였다. “언니, 잘 들어….. 아빠가 가망이 없대…..” 이게 무슨 일이지? 건강하셨던 아빠가 왜 갑자기? 사람들이 쳐다보든 말든 엉엉 울며 지하철을 타고 아버지가 계신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들이 열심히 심폐 소생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떠한 희망도 없이 의무적으로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제발 한 번만 기적을 보여 달라며 애원하며 기도했다. 의료진들의 의미 없는 노력이 계속되던 중, 아버지는 결국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친구분과 통화 도중 쓰러지셨고, 갑자기 통화가 안 되는 걸 이상하게 여긴 친구분이 119에 신고를 하셨다고 한다. 죽음이 이렇게 갑작스러운 것인 줄 꿈에도 몰랐다. 인간은 누구나 죽게 마련임에도 이렇게 일찍 찾아올 줄은 몰랐다. 좋았던 추억보다 아버지에게 잘못했던 기억들만 떠올랐다. 나 자신을 무던히도 책망했다. 준비하지 못한 이별은 후회만 가득히 남는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그 날 이후 한 가지 트라우마가 생겼다. 나는 핸드폰을 꺼두지 못한다. 간혹 배터리가 부족해서 꺼지면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아 마음이 굉장히 불안해진다. 그 당시 핸드폰을 켜 놨더라면, 과외 도중 달려가 의식이 남아있던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말씀드릴 수 있었을 것이다. 큰 딸은 어디 있냐고 물으셨다는 아버지 말씀이 아직까지도 가슴에 박혀 있다.


아들러는 트라우마란 없다고 말한다. 프로이트는 있다고 말한다. 정답은 없다. 


나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생활에 큰 불편함은 없다. 그래서 극복하고자 노력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저 세월과 함께 조금씩 무뎌지길 바랄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아빠 50만원만." 중년의 자녀로 부터 걸려오는 전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