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클이 되고 싶다.

마음으로 하는 요리

by 조현

문득 오래된 친구에게서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어.'로 시작된 전화는 한참 동안 이어졌다.

사는 이야기. 힘든 이야기를 조심스레 나누며 서로를 따뜻하게 위로했다.

'힘드니까 네 생각이 나더라. 또 전화할게! 고마워. 만나서 자세히 이야기하자'로 끝마친 전화를 한참 동안 들여다봤다.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피클 같은 친구가 되고 싶다.

피클은 메인 음식은 아니다. 또 꼭 필요한 음식도 아니다.

그러나 항상 곁에 있지는 않아도 되지만 어느 순간 간절히 생각나는 것.

생각만 해도 상큼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

어려운 순간 꼭 있었으면 하는 것. 그

게 피클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피클 같은 친구이고 싶다.


빨갛게 물이 들어 색까지 예쁜 피클을 만들어 함께 통화했던 친구에게 보내주어 함께 나누어 먹어야겠다.


1. 재료 준비하기

생각보다 피클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재료 선택이 중요하다.

나는 빨갛게 색을 내는 것을 적양배추로 선택했다. 인터넷에서 보니 비트를 쓰는 사람도 많았다.

빨간색보다 순수한 투명한 색이 좋다면 넣지 않아도 된다.

상큼한 맛을 추가하기 위해 레몬 넣어야겠다.

레몬. 적양배추. 흰 양배추. 무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식초를 준비한다.

모두 깨끗이 씻는다.

순할 것 같은 는 과정은 복잡하고도 정성이 많이 필요하다.

일단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고 식초물을 희석시킨 물에 잠시 담근다. 얼마 뒤 다시 꺼내 흐르는 물에 씻어낸다. 오돌토돌한 표면이 있는 레몬을 굵은소금으로 박박 씻는다.

그리고 보관할 용기도 준비한다. 깨끗한 물에 씻어 중탕해서 한쿰 식혀놓아 멸균 처리된 유리 용기면 좋다.

처음 친구가 되는 과정은 재료 씻는 것만큼 간단하면서도 어렵다.
흐르는 물에 대충 헹구기만 해도 되고 열심히 깨끗이 씻어도 '씻는다'라는 건 결말은 같고 어떻게 씻었는지 티도 잘 안 난다.
친구도 간단히 그냥 지나치다 만나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어설프게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오랜 시간을 쌓아오며 교류하다 이어진 정성 들인 친구관계일 수도 있다.
나는 후자이고 싶다.
대충은 어느 순간, 어느 계기로 큰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것이 재료 씻기이든 친구관계이든.



2. 재료 썰 담기

재료를 깨끗이 씻은 후 잘 다듬어 썰어준다. 먹기 좋은 크기로 마음대로 썬다.

나는 흔히 레스토랑에서 봤던 크기로 썰었다.

먹을 때 그대로 꺼내먹을 수 있도록 한입 작은 크기로. 또 보관하기 좋은 용기에 담기 쉽게 작은 크기로.

그리고 자른 것들을 차분히 용기에 담으면 된다.

양배추를 넣었다가 무를 넣었다가 가끔가다 레몬도 이따금씩 하나 차곡차곡 넣어주면 된다.

친구가 될 때 나를 다듬는 시간이 필요하다.
친구와 함께 맞춰가는 시간.
내가 나만의 모양이면서도 함께 할 수 있는 모양으로 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모양은 함께일 때 어울리면서도 나만의 특성, 재료에 특성에 따라 다르게 잘라내고 맞춰져야 한다.


3. 식초물 끓이기

식초물은 뜨거울 때 부어야 양배추가 아삭한 맛을 유지한다.

식초물을 끓일 땐 향이 좋지 않으니 환기를 준비하고 시작한다.

비율은 취향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나는 물:식초:매실액(혹은 설탕)이 2:1: 1이 되도록 한다.

설탕이나 단맛을 내는 재료 자체를 평소 사용하지 않아 매실액을 넣었다.

비율만 맞춘 채 내가 썰어놓은 재료들이 자박자박 잠길만큼의 양을 만들어 끓여준다.

모두 한 곳에 부어 한 번 파르르 끓어오를 만큼만 끓여 부어주면 된다.

친구든 식초물이든 한 곳에 섞여
온도가 올라 파르르 끓여지면 이젠 하나의 환경이 된다.
물도 식초도 아닌 것.
나와 네가 섞여 하나의 독특한 세계가 된다.
그리고 약간의 비율을 다르게만 해도
그 세계는 누구든 알 수 없고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특별한 그들만의 한데 어우러짐이 된다.


이 물을 아까 차곡차곡 담아놓았던 용기에 식기 전에 부어주면 된다.


4. 완성. 기다렸다 먹자

완성된 피클을 바로 먹을 수는 없다. 시간이 지나 3~4일은 두었다 먹어야 한다.

일주일 정도는 지켜보고 먹자.


친구도 그렇다. 바로 친구가 될 수는 없다.
서로 단단해질 시간이 필요하다.


힘들 때, 기쁠 때 함께 지나온 시간이 겹겹이 쌓여

아삭하고 같은 색으로 물든

친구에게

보내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