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하는 요리
내가 자주 만드는 떡볶이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매콤 매콤 한 빨간 떡볶이. 그리고 밥반찬으로도 딱인 단짠단짠의 정석 간장 떡볶이.
이 둘은 고춧가루와 고추장을 넣느냐 간장을 넣느냐로 달라진다.
지나간 연애도 그런 것 같다.
끝 맛이 매우 얼얼한 매콤하고 뜨거운 빨간 떡볶이 인가.
추억하면 아련하고 담백했던 조금은 밋밋했던 간장 떡볶이 인가.
아무 색이나 입힐 수 있는 새하얀 도화지 같은 떡을 준비한다.
기다란 떡볶이 떡. 납작한 떡국 떡. 가운데가 귀엽게 옴폭 들어간 조랭이 떡. 요새는 현미 떡. 치즈 떡도 있다.
종류가 참 다양하다. 원하는 취향에 맞게 준비하고 물에 잠시 불려 놓는다.
떡볶이에서 떡은 주인공이다. 마치 연애의 남녀 주인공같이.
하얀 떡은. 나였고, 상대방이었다. 어떤 연애도 받아들이며 물들어 버리는. 쫀득쫀득해서 서로 내버려 두면 어느새 찰싹 붙어버리기도 하는.
그런데 물에 불리기와 같은 준비과정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메말랐던 떡이 급작스러운 조리과정을 겪다가 터져버리기도 한다. 잘 저어주지 않으면 눌어붙기도 한다.
준비되지 않고 급작스럽게 시작한 연애는. 때론 날 다치게도 했다.
물에 불려놓았던 떡은 꺼내어 간장과 참기름을 살짝 넣고 버물려 놓는다.
나중에 떡이 조금 더 맛있어지게. 혼자서도 붙지 않게.
난 msg를 선호하지 않는다. 다른 첨가물도 거의 넣지 않는다. 그래서 감칠맛을 위해서 육수가 조금 필요하다.
요리과정 시작 전 육수를 미리 끓여놓아 바탕을 만들어 놓는다. 육수가 첨가되면 떡볶이는 훨씬 깊고 감칠맛 나는 떡볶이가 된다. 하지만 다른 맛이 너무 강렬해서 사실 육수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다시마. 멸치. 무 정도만 넣으면 된다. 모두 같이 넣고 바글바글 계속 끓이고 있으면 된다.
어묵, 삶은 달걀, 양배추, 양파 등등... 넣고 싶은 재료들을 미리 손질해둔다.
나는 어묵, 삶은 달걀, 양파 정도를 넣는다. 때론 양배추가 있다면 넣는다. 간장 떡볶이에는 파프리카를 넣어주면 더 예쁘고 맛있다. 어묵은 간장 떡볶이에는 어울리지 않더라.
어묵은 미리 끓는 물에 살짝 대쳐 기름기를 빼놓고, 달걀은 삶아 껍질을 까 놓는다. 양파와 양배추는 미리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놓는다. 이 재료들은 주변인이 된다. 때론 메인으로 역전해버리기도 하지만.
맛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참견인이 된다. 양배추와 양파는 채소 본연의 달달한 맛을 내어주고, 어묵은 맛있는 감칠맛을 더해준다. 삶은 달걀은 매콤한, 혹은 짭조름한 떡볶이 맛을 중화시켜 준다.
연애할 때 친구들이 그렇다. 어떤 이는 지지해주어 더 관계를 깊어지게 해주기도 하고, 어떤 친구는 싸울 때 중재인이 되기도 한다. 또, 어울리지 않은 어떤 친구는 둘 사이를 깽판 쳐서 망가뜨리기도 한다. 어울리지 않은 재료를 넣어 엉뚱한 맛을 내버려 더 이상 떡볶이가 아니게 만들기도 한다.
다른 재료를 넣지 않고 떡볶이에 떡만 넣을 수도 있다.
같이 만난이 하나 없이 오롯이 단둘이 하는 그런 연애와 같이.
프라이팬에 먼저 기름을 조금 넣고 파와 다진 마늘을 넣어 볶는다. 맛있는 향기가 나면 양배추와 양파를 넣어 먼저 볶는다. 그리고 밑간해 놓은 떡과 어묵을 넣어 볶아 준다. 물기가 날아갈 때까지. 이때 어울리는 과정은 뜨겁고도 생각보다 어렵다. 자칫하면 파나 다진 마늘이 타질 수도 있고, 떡들이 눌어붙을 수도 있다. 불 조절을 잘하며 중간보다 센 불에서 휙휙 볶아 주어야 한다. 이 재료들이 한데 모여 달궈질 때까지 맛있게 볶아질 때까지.
친구, 가족 등 내 주변인에 연인을 소개해주는 건 매우 조심스럽고 어색한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쉽게 어울려 하나가 되면 좋으련만. 누군가 까맣게 타듯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 생길 수도. 빼버리고 싶은 사람이 생길 수도 있다.
주변과 잘 어울러졌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아까 미리 끓이고 있던 육수를 국자를 이용해 넣는다.
국물 떡볶이처럼 만들고 싶다면 조금 많이. 아니라면 딱 한 국자만 넣는다.
이제 양념이 달라진다.
빨갛고 강렬한 떡볶이가 먹고 싶다면 고추장, 매운 고춧가루를 육수에 풀어 넣는다.
고추장과 매운 고춧가루는 한 스푼, 혹은 두 스푼씩 처음에 넣고 색깔과 맛을 보고 더 넣을지 말지 결정한다. 고추장을 더 많이 넣고 매운 고춧가루는 매운맛을 첨가할 때만 조금 넣는다.
간을 위해 간장과 달달한 맛을 위해 올리고당이나 물엿도 조금 넣는다.
담백하고 단짠단짠 하는 간장 떡볶이가 먹고 싶다면. 간장과 올리고당 혹은 물엿 (나는 가끔 꿀)을 넣는다.
간장과 올리고당의 비율은 정확히 반반. 그래야 단짠단짠의 정석이 된다. 간장과 물엿도 처음 한 두 스푼만 넣고 간이 싱겁다면 간장만 더 넣어주면 된다.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 환경, 상대방의 성격과 상황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수만 가지의 이유로. 매콤하고 강렬한 연애가 되기도 담백하고 짭조름한 연애가 되기도 했다. 나는 울고 싶게 강렬하게 매워서 다신 그 사람 떠올리기도 싫은 적도, 생각하면 담백하고 달달해서 가끔 그립 기도 한 적도 있다. 아마 누구나 그렇듯.
어쩌면 한 번의 연애에 두 가지 맛을 다 느껴 보기도 했다.
떡볶이는 내 취향껏 결정했지만, 연애의 끝은. 그 맛은. 내가 결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만들어졌지.
맛이 잘 배어들 때까지 정성과 노력으로 저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떡은 어느새 가라앉고 눌어붙어버린다. 떡볶이는 오래 끓일수록 떡에 맛이 스며들어 맛있어진다. 이때 미리 준비해둔 육수를 이용해서 물이 줄어들었다 싶으면 더 넣으며 끓여주면 타지 않고 맛있게 스며들게 만들 수 있다. 단, 너무 많이 육수를 자주 넣으면 맛이 희석되어 버린다. 육수는 떡볶이가 끓는 템포를 맞추어 온도가 떨어지지 않게 따뜻하게 유지되고 있으면 넣을 때 좋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 맛있는 떡볶이가 된다.
정성과 노력을 들여야 사랑은 오래갈 수 있다. 익숙해졌다고, 편해졌다고 놓아버려 둘은 가라앉고, 닥쳐오는 다른 현실에 주저앉아버렸다. 그리곤 다시 맛있고 달콤한 그때로 영영 돌아가지 못했다.
가끔은 어떻게든 다시 이어간 적도 있다. 하지만 되돌아간다 해도 이미 까맣게 한쪽 면은 상처 입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한쪽이 눌러부터 타버린 딱딱한 떡이 되듯 상처가 되어 남아있었다. 잘라내려 해도 잘라내지 못하고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어쩌면 주변의 많은 개입과 외부 환경으로 인해 둘 사이가 희석되기도 한다. 어느새 둘 사이는 멀어지고 돌아다보니 다시 시작할 수도 없이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리게 되었다. 제대로 된 끝맺음도 없이. 그냥 이도 저도 아니게 끝이 나버렸다.
요리과정의 끝은 맛있는 떡볶이를 먹는 것이다.
그렇다면 맛있는 연애의 결말은. 달콤한 결혼을 하는 것일까?
아무튼. 맛있게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