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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아 Jul 22. 2015

나란 사람

어딘가엔 쓸모가 있을 거라고 믿고 싶은 오후에

그래도 뭐랄까 첫 글인데 무엇 하나 소개 없이 시작하기엔 좀 민망해서 나에 관해 써뒀던 글을 옮긴다.


쓰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일련의 생산들. 쓰는 것에서 파생되는 말이라든가, 다양한 표현 방식을 좋아해서 내가 나를 드러내는 걸 좋아한다고 착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사실 스스로 드러나는 걸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좀 남사스럽고 부끄럽다. 그렇지만 내 결과물이 드러나는 건 괜찮다. 그렇게 어떤 창작이나 어떤 생산으로 밥 벌이를 하는 게 꿈이었고 아직 그 꿈을 놓지는 않았다. 물론 지금은 내 이름이 아닌 이름으로 생산을 해내고 그럼으로써 밥 벌이를 하고 있지만 난 아직 젊고 거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니까. 길지는 않아야 한다고 계획할 뿐이다.


1989년 3월에 태어났다. 물고기자리는 변덕스럽고 예민하고 예술가 기질이 뛰어나다는데, 성향상 틀린 것 같진 않다. 성향은 그렇다만, 문제는 늘 재능이다. 재능이 없어서 그렇다. 뭐든지 시작하면 내가 잘 안다고 생각할 때까지는 해야 해서 손 댔던 것, 관심 가졌던 것은 다 웬만큼 알고 할 줄 알지만 문제는 제대로 특별히 잘 하는 하나는 없다. 그나마 가장 욕심나고 더 잘하고 싶고,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 보면 질투난 유일한 게 글재주밖에 없었다. 가장 오래 좋아하고 끌어온 취미는 사진 찍기. 도구는 뭐여도 별로  상관없었던 것 같다. FM-2도 써봤고 지금까지 가장 오래 쓰는 DSLR은 니콘 D80. 시대가 시대다 보니 요즘은 아이폰으로 제일 많이 찍는다. 이 곳에 올리는 사진도 별 이야기가 특별히 없으면 다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이다.


오글거리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고 오글거리는 걸 내가 하는 건 죽는 것만큼 싫다. 그래서 늘 다대다 면접에 약했던 것 같다. 오히려 면대면이나 다대일에는 익숙한데, 다대다 상황에서 오글거리는 포지션을 취함으로써 튀어야 하는 상황을 굳이 해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늘 있다. 힙한 것과는 거리도 멀고 뭔지도 잘 모르겠다. 어색한 일자 단발머리와 어정쩡한 눈썹, 금속테 안경에 의상학적 측면이나 인간의 신체적 측면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아무 데나 뎅강 뎅강 잘라놓은 옷을 입고 어정쩡한 표정으로 걸어 다니는 게 힙한 거면 그냥 안 하고 싶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아하며 여태 한 번도 그러고 싶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러고 싶지 않을 내 스스로가 좋다.


술을 잘 마신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과는 다르다. 다만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 사회 생활에 지장 있게 못 먹지는 않는 편이며, 이 위험한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여성이라는 개체로서 술 먹고 위험한 일을 당하지 않을 정도로 스스로를 챙길 수 있을 만큼은 조절해왔다는 게 다행인 점일 뿐이다. 기본적으로 술 자체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알코올 냄새가 별로다. 맛있는 수제 맥주 정도라면 모를까, 특히 소주는 정말 냄새가 별로다. 기관지가 약해서 담배 냄새를 피한다. 그렇지만 만나는 사람이 담배를 피운다고 한들 끊으라고 해본 적도 없고 하지도 않는다. 나를 배려해서 내게 안 좋으니 내 앞에서 안 피워주면 고마운 일이지만, 내가 끊으라고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커피는 심각하게 좋아한다. 물론 맛없는 커피는 심각하게 싫어한다. 좋아하는 카페가 되는 기준은 커피맛과 선곡이 1순위, 그 다음이 콘센트, 그 다음이 화장실이 깨끗하고 편리한지 여부 정도. 하지만 커피맛과 선곡만 좋은 카페를 찾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라서 엄청난 단골이 된 카페는 아직. 그래도 서울에서 좋아하는 카페라면 한두 군데 정도 꼽을 수는 있다. 사실 좀 마음을 두기 시작했다. 그런데 부끄러워서 티는 못 내고 있다. 원래 그렇다. 좋아하는 게 생기면 엄청 좋아하지만, 쉽게 좋아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래도 좋아하고 나면, 엄청 좋아한다. 정말로. 이 글들은 좋아하는 것들에 관한 기록이 될 거다.


남자 볼 때 뭘 제일 보냐는 질문에는 사실 한 마디로 대답을 잘 못한다. 그냥 좋으면 좋은데.  남자뿐만 아니라 모든 게 그래. 좋은 게 좋은 거라. 그래도 굳이 남자에게 섹시함을 느끼는 부분들이나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너무 구체적이라서 좀 민망하지만 넥타이 맬 때 턱을 반쯤 들고 거울을 내려보면서 이렇게 이렇게 하는 거 좋아하고 담배 안 피우는 사람이 머리카락에서 담배냄새 나면 뭐랄까 좀 삶의 애환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좋고 신체 부위 중에서는 수염 수염자국 복숭아뼈 목젖 그런 게 좋다. 너무 이상한가. 수염자국도 없고 하얗고 목소리도 막 미성이고 이런 스타일은 정말 한 번도 좋아해 본 적이 없는 것만 같다.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해야만 하는 일이 싫다. 해야 할 이유가 없지만 하고 싶은 일은 괜히 더 하고 싶다. 원래 좀 청개구리다. 한참 좋다가도, 뭔가 쉬워지면 좀 재미없는 것 같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상당히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혼자 있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편. 어찌 생각하면 옆에 있는 사람을 꾸준히 외롭게 할 타입이기도 한데, 그래서 난 내재적으로 행복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혹은 본연의 외로움을 알고, 그게 너 때문만은 아니며, 그게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그냥 본능적으로 아는 사람. 그게 문제가 된 적이 많았기에. 이걸 아는 게 쉬운 건 아니지만, 이걸 알고 이해함으로써 관계가 한참은 성숙해질 수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아, 행복하고 싶다. 그렇다, 어쩌면 나는 행복하고 싶은 사람인 것 같다.


* 블로그 http://www.sugaryesplease.me 에 썼던 나에 관한 글. 어쩌면 시간이  지날수록 덧대어지거나 빠질 수도 있는 이야기들. 나도 아직 나를 잘 모르니까, 그저 2015년을 살고 있는 나란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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