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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아 Aug 22. 2015

따지자면 결혼을 결심할 자신이 없어

결혼을 공론화해야 할 시점이 다가온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막연한 공포라는 걸 깨달았다. 결혼이라는 개념 자체를 내가 썩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결혼이라는 개념을 내 인생에 끌어오는 결심을 할 자신이 없는 거다. 여러 가지 이유를 들자면 들겠지만, 사실 다 핑계가 아닐까 싶다. 그냥 그런 결심을 하는 게 자신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주변에 친구들이 하나 둘 결혼을 시작한다. 물론 좀 이른 것이긴 하다(고 느껴진다). 언니들이 결혼을 시작했다. 내가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를 긍정-혹은 이해-하지 않아-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누군가를 이미 만나고 있고 그 사람이 괜찮아서, 같이 남은 인생을 설계해 나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혼을 결심하는 게 아니라 그냥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접어들어, 막연히 결혼을 해야겠다, 결혼이 하고 싶다, 고 푸념하는 지인들을 볼 때마다 새삼스럽다. 결혼이 무슨, 취학통지서 받고 입학하는 그런 개념의 것인가 싶어서다. 또 새삼스러운 건 잘 만나던 연인이 하필이면 결혼 얘기가 나와서 헤어지거나, 헤어질 위기를 겪는 경우다. 이 경우엔 대개  한쪽에서만 결혼을 하고 싶어 했던 상황이다. 혹은, 둘 다 결혼은 하고 싶은데  한쪽이 준비가 덜 됐다고 생각했거나. 결혼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으면 전혀 문제가 없이 여태 잘 만났던 것처럼 앞으로도 잘 만날 연인이 결혼을 공론화함으로써 헤어져야 하는 상황은 슬프다. 너무나도.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모든 비극은 아무런 검증도 없이 '결혼은 안정으로 접어드는 것'이며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 결혼의 적령기'라고, '결혼은 누구나 해야 하는 것인데 이 적령기를 넘기면 그게 자의든 타의든 도태된다'고 규정하는 사고방식에서 비롯하는 게 아닐까 했다. 아니, 결혼이 무슨 입시도 아니고. 프레임이 똑같다. 제도권 교육은 대한민국 내에서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한 기본적인 일이며, 20살은 대학에 들어가는 나이고, 대입은 누구나 해야 하는 것인데 이 나이를 넘으면 그게 자의든 타의든 도태된다는 것.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사실 나도 너무나 평범하게 제도권 교육 12년 겪고 대학 나와 어쩌다 대학원까지 다니고 있지만(물론 졸업은 못할 것 같다), 사실 대학이라는 것도 그렇지 않은가 싶다. 꼭 갈 필욘 없었던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 했던 거다. 근데 결혼은, 결혼은 대학보다 어쩌면 더 큰 문제가 아닌가 싶은 거다. 사실 결혼에 대한 특별한 로망이랄까 그런 게 없어서 내가 결혼 자체를 썩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기도 하지만, 아주 현실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인 배려의 차원에서 본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나 혼자이던 삶에, 새로운 뿌리를 들여오는 일이고, 그 뿌리와 함께 같은 땅에서 같은 양분을 골고루 섭취하고 따로 또 같이 그렇게 잘 살 수 있어야 하는 게 결혼인데,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없으면서 적당한 나이가 됐다고 무턱대고 결혼을 결심해야 한다는 것도 좀 이상하거니와, 설령 그런 사람일 것 같은 사람이 있다고 한들, 여태 거의 30년을 다른 인생을 살았던 사람 둘이 만나 공동체가 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나이가 됐으니까 하라는 말은 좀 잔인하지 않나 싶다. 


여하튼, 그래서 난 좀 두렵다. 아직 나에게 닥치지 않은 일이지만, 내게 결혼이라는 일을 공론화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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