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좋았다 아파도 울지 못했다 그랬었다
정말이지 잘 알지 못하는 제주라는 섬에, 너무 급작스럽게 떨어져버렸고 생각지도 않은 시간을 혼자 보내게 됐다. 그리고 조금은 당황스럽게도 한 번쯤 이미 치렀어야 할 의식처럼 몇 년 전의 어떤 기억들을 솎아내고 있다.
제주가 이렇게 가까운 곳인 것도 저렴하게 올 수 있다는 것도 몰랐을 때, 어떤 제주라는 존재로부터 받았던 상처와 할퀴어진 감정들, 그런 것들이 이렇게 잔뜩 내가 알지도 못하는 제주라는 공간에서 알지도 못하는 그림으로 물 밀듯이 밀려와서다.
그때 그 제주라는 공간이 어떤 의미였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만약 그걸 알았대도, 내가 분명 같은 선택을 했으리란 것이 너무나 명백하다는 것을 이렇게 막연히 한 시간씩이나 버스가 오지 않는 게 당연한 섬에서 정류장에 멍하니 앉아있으니까 알겠다.
이제야 솔직해질 수 있는 감정들 앞에서 이제야 덤덤해진다. 그래도 그땐 좋았다. 그렇게 아파도 좋았다. 그렇게 아프고 힘들었는데 울지를 못 했었다. 좋다고도 말하지 못했었다. 그때의 실체 없던 제주는 지금 내가 걷는, 앞으로 언젠가 또 만날 제주와는 다른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