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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아 Jul 26. 2015

난 아직도 물고기를 키우지 못해

내가 기억하는 첫 죽음

사실 별 일은 아닌데, 이상하게 그 기억을 떠올리면 뭔가가 목 끝까지 차오른다. 그게 턱, 하고 튀어나오진 않는데, 이상하게 그렇게 불편하고 머리가 아파서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내가 경험한 첫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어릴 때 나는 열대어를 키웠다. 사실 특별히 소중하고 그랬던 건 아니었다. 특별히 키우고 싶어서 시작한 게 아니었다. 왜였는진 모르겠지만 나는 외동딸이었고, 이것 저것 어릴 때 그 또래 애들이 해보는 것들은 어지간히 해봤던 것 같다. 열대어 키우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어느 날 아빠가 사왔던 게 아닐까 싶다.  특별히 애정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투명하고 작은 어항에 몽글몽글한 노란 플라스틱 구슬이 예뻤고, 헤엄치는 열대어가 예뻤던 것 같다. 지나고 나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걸 수도 있겠고, 사실 잘 기억이 안 날 정도로 큰 존재는 아니었다. 오히려 하모니카나 리코더, 멜로디언, 그런 것들이 더 생각이 난다. 


초등학교 3,4 학년 무렵이었을까. 그렇게 고학년 때는 아닌 것 같다. 기억이 잘 나질 않는 걸 보면 그렇다. 엄마는 지금도 내가 머리 기르는 걸 싫어하지만, 그땐 더 했다. 나는 앞머리를 자르고 싶었고, 엄마는 내가 앞머리를 자르는 걸 싫어했다. 어느 날 나는 집에 혼자 있었고, 앞머리를 혼자 잘라보고 싶었다. 어쩌면 이떄부터 내가 엇나갔던 것 같기도 하지만, 나는 앞머리를 자르고 나서 머리카락을 엄마가 보지 못하게 치워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어차피 짧아진 앞머리를 보면 엄마가 알 텐데, 왜였을 지, 어쩌면 어려서였겠지만. 


그렇게 앞머리를 자르고 머리카락을 손에 쥐고 있었는데, 엄마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은 고층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그때 우리 집은 저층 아파트 2층이었고, 엄마가 올라오는 걸 대번 알 수 있었다. 근데 왜 그랬는지, 그 머리카락을 창 밖으로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거다. 내 책상은 창가에 있었고 창문만 열면 되는 거였는데. 


그리고 그 때 사건이 벌어진 거다. 창문을 열고 머리카락을 버리고 창문을 다시 닫다가 창가에 있던 어항이 그대로 쏟아졌다. 물이 쏟아졌고, 바닥에 물이 모두 쏟아졌고, 어항에서 쏟아져 나온 열대어들은 내 방 바닥에서 그렇게 사정없이 팔딱거리기 시작했다. 어쩔 줄을 몰랐다. 너무 무섭고, 당황스러웠고, 사실 조금 징그러웠고, 이걸 어떻게 해야겠다거나 얼른 담아서 물이 남은 어항에 넣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소리만 질렀다. 울지도 못했다. 너무 무서웠고, 조금은 징그러웠다. 


그때 엄마가 왔고 나는 거의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엄마는 능숙한 솜씨로 그걸 수습했던 것 같다. 잘 기억이 안 난다. 나는 너무 놀랐었고, 너무 어렸었다. 어떻게 된 일인 지 어떤 기준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몇 마리는 엄마의 손에 의해 다시 어항으로 들어갔고, 몇 마리는 휴지에 싸여 버려졌다. 그리고 그제야, 내가 별로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열대어 중, 그나마 가장 예뻐했던 작고 까만 그 한 마리도 휴지에 싸인 몇 마리 중 하나라는 걸 깨달았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었다. 휴지에 싸여 버려질 때 어쩌면 살아있었던 걸 수도 있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알 도리가 없었다. 이미 돌이킬 수 없었으니까.


몇 마리는 살아남았지만 그 몇 마리가 원망스럽기까지 했고, 예뻐하던 것을 지키지 못한 내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사실 내가 예뻐했다는 것도 그제야 깨달았던 건데, 그게 너무 원망스러웠다. 그러다 남은 열대어들이 얼마나 내 방에 더 살았는지, 어떻게 살았는지도 별로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게 내 열대어에 관한 기억의 전부다. 


이상하게 물고기를 보면 자꾸 그때 생각이 난다. 그리고 자꾸만 아프다. 그래도 언젠간 써내야 할 것 같았다. 고해성사이자 내가 아꼈던 어떤 것에 대한 미안함이자 내가 기억하는 첫 죽음이자 내가 겪은 어쩌면 첫 이별. 한 번은 이렇게 써야, 나도 나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아직도 물고기를 키우지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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