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아 Aug 03. 2015

혼자가 좋은 건 두려움 때문일까

상대방이 없인  아무것도 하지 못할 내가 되기 싫어서 

만나는 사람이 있든 없든 내 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상대방이 서운할 수도 있을 일이지만, 그래서 나는 각자가 혼자인 시간을 잘 견디며 그게 당신을 향한 내 마음이 부족해서가 절대 아님을 알아주는 사람이 좋았다. 그래서 내가 또래를 잘 못 만났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바빠서, 어쩌면 이미 닳아서, 너 없인 죽고 못 살 연애를 이제는 그만해야 하는 사람들은 대개 나보단 나이가 조금이라도 많았다. 그래서 나를 조금은 방관하고, 나도 없이 못 살 연애를 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를 언제나 동경해왔고 그게 아니라면 이런 나를 이런 대로 온전히 이해해주는 사람이 좋았다. 


스트라이다라는 기묘하게 생긴 접이식 자전거를 지난 봄에 선물받았다. 그런데 정작 탄 건 이제 겨우 네 번 정도 됐다. 이유는 단순했다. 혼자 이걸 펴질 못 해서다. 이 자전거가 접어두면 바퀴 사이에 강한 자석의 힘으로 붙어있는 건데, 당최 내 손아귀의 힘으로는 이게 펴지지가 않는 거다. 그래서 한두 달을 못 타고 베란다에 뒀었다. 알고 보니 요령이 있으면 쉽게 펴질 것을 그걸 못해서 한 번은 끌고 나갔다가 낑낑대기만 하고 펴질 못하고 주저 앉아 울다가 아이스크림만 물고 집에 들어왔던 적도 있다. 사실 울고 싶은 날이었는데 자전거가 안 펴진다는 핑계를 대고선 울었던 거다. 누군가 펴주지 못하면 탈 수 없는 자전거를 보면서 참 속이 상했다. 물론 이제는 혼자서도 곧잘 편다. 접을 땐 역시 문제가 생기지만 그것도 곧 요령을 터득하겠지.


그런데 문득 너무 무서운 거다. 상대방이 없으면 내가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 생긴다는 게, 갑자기 당신이 내 생활에서 사라지면 내가 못 하는 일이 생긴다는 게, 상대방이 사라진 그 시간을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기분이 든다는 게. 누굴 만나도 나 혼자 숨 쉴 틈을 꾸역 꾸역 지켜내 왔던 이유가 어쩌면, 사실은 혼자인 게 너무 싫어서 그랬던 게 아닐까, 그 생각이 문득 드는 거다. 아 어쩌면 나는, 혼자인 시간을 그렇게도 좋아하는 나는, 어쩌면 혼자인 게 너무 무서워서 그랬던 걸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문득, 드는 거다. 참 역설적인 일이다.


비 오던 날 목을 꽉 꽉 막히게 했던, 계란을 넣은 떡볶이를 사왔던 그는 나에게 그런 첫사랑이었다.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할 수 있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없었다. 놀아도 노는 게 아니고 쉬어도 쉬는 게 아니고, 공부를 제외한 모든 시간엔 죄책감을 가져야만 하는. 공부를 제외하곤 그가 내게 전부였다. 그가 다니는 학교는 내 목표였고, 그가 지내고 있는 대학생활은 내가 곧 해야 할 일이었고, 그걸 위해 나는 지금 억지로 이 수험생활을 버티고 있었고, 이 생활을 빼면 나 자신보다도 당신이 중요했고, 입시를 망치는 것과 이 사람을 잃는 것 중에 택하라면 입시 따윈 하나도 중요하지 않을. 그가 그렇게 좋았고, 그밖에는 좋아할 수 있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었으니까. 


어쩌면 그래서 내가 그 열병 같은 첫사랑과 함께 수험생활을 마치고 만난 '스무 살'이라는 시기는, 해방과는 좀 다른 형태의 반작용이었던 게 분명했다. 어른스럽고 싶었던 것도 있겠지만 그때의 나처럼 상대방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내가 되지 않고 싶었다. 굳이 너 없이도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얼토당토 않은 유치함도 아니었다. 어쩌면 그건 무방비 상태로 내던져지지 않기 위한 방어기제 중 하나였던 거다. 너 없이도 혼자 할 수 있는 게 많고, 너 없이도 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너 없이도 괜찮은. 굳이 멋져 보이고 싶거나 굳이 그랬던 게 아니었다. 그렇게 오해하고 가버린 사람도 있었지만 괜찮았다. 나는 혼자도 괜찮았으니까. 


최근에 누군가 물었다. 네가 좋아하는 뮤지션과 연애한다는 상상을 해본 적 있냐고, 그러면 어떨 것 같냐는 질문이었다. 그 전까진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었는데 질문을 받는 순간 상상만 해도 조금 이상해서 그냥 팬이나 하고 싶다고 대답하고 말았다. 그 이후로 좋아하는 뮤지션들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들의 과거가 어쩌면 녹아있을 가사를 자꾸 곱씹게 된다. 영원히 사는 방법은 시인이나 화가와 사랑에 빠지는 거라는데, 어쩌면 뮤지션과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가사로 회자되어야 하는 옛사랑을 가진 걸 텐데.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치니까, 원래도 그냥 팬이나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그런 것 같았다. 별로 안 좋아하는 뮤지션이라면 모를까, 좋아하는 뮤지션과 연애를 하면 언젠가 내가 못 듣는 음악이 생기는 게 아닌가. 좋아하던 음악인데,  사람뿐만 아니라 그 음악까지 잃어야 한다면 너무 슬플 것 같다. 좀 무섭다. 상대방이 없는 건 괜찮을지 몰라도, 상대방이 없으니까 못하는 게 생길 나는 견딜 수가 없다. 


상상만으로도 또 슬프고 또 무섭다. 또래 친구들이 열병을 겪을 동안 어른스러운 척 쿨한 척 해왔던 나는, 어쩌면 가장 어린 상태로 고슴도치마냥 가시를 세우고 숨어있는 걸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난 아직도 물고기를 키우지 못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