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아 Mar 08. 2019

당신의 오늘은 어떤가요?

[스얼레터#155] 11월의 기록들에 대하여

제가 2019년 2월까지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재직한 동안, 스얼 매니저로서 쓴 뉴스레터의 도입부를 전재합니다. 스얼 매니저들의 이야기는 매주 뉴스레터로 찾아가는데요, 스얼레터를 구독하시거나 스얼 브런치 매거진에서도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스얼 브런치: https://brunch.co.kr/magazine/saletter 
스얼레터 구독: https://mailchi.mp/startupall/newsletter


18.12.03 당신의 오늘은 어떤가요?


11월은 제게 좀 특별한 한달이었습니다. 가깝게 혹은 느슨하게 아는 사람들, 그리고 아예 모르는 사람들까지 함께 30일동안 #30일프로젝트 라는 이름으로 #매일그림일기 프로젝트를 진행했거든요. 카카오 사내에서 100일 프로젝트로 진행해왔다는 일상의 소소한 사이드 프로젝트인데, '30일'로 밖에서 시도해본 겁니다. 


거창한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니예요. 사진을 찍는 것도, 온라인에 글 쓰는 것도 좋아하지만 왠지 휘발하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종이에 손으로 기억을 남겨보면 좋겠다는 생각이었고, 30일 중 빠뜨린 날만큼 천원을 곱해 함께 기부하자는 뜻도 좋았습니다. 그림을 잘 그리는 건 아니지만, 그날 마신 커피가 유독 맛있었다거나 누군가와 걸으며 나눈 대화가 기억에 남았다거나, 그런 것들을 좀 더 오래 남겨두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이 그림일기가 제 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줬어요. 처음에는 막연하게, 어쩌면 조금 가볍게 일상을 기록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는데요. 그림일기를 위해 책상에 앉아 노트를 펼쳐놓고 고민하는 무게가 날이 갈수록 달라졌습니다. 차분하게 하루를 돌이키게 됐거든요. 일어난 순간부터, 일어나서 처음 확인한 메시지, 출근길 지하철, 하루 일과와 집에 돌아온 순간까지, 그 사이사이 만난 사람들, 나눈 대화들, 느낀 공기들을 매일 좀 더 또렷하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림일기를 그리고 쓰는 행위보다 그 많은 순간들 속에 내가 남기고 싶은 기억을 꺼내서, 서툰 솜씨로 그릴 수 있는 어떤 그림을 남기고, 거기에 그림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감정들을 나의 언어로 남기는 일. 그 일이 마치 제 생의 감각을 깨워주는 기분이었습니다. 아, 또 있어요. 일상의 수많은 순간들, 그 순간들마다 짧게 스치는 생각들, 그 생각들을 표현하는 내 머리 속의 어떤 단어나 문장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내가 이렇게 많은 생각을 했고, 많은 복잡다단한 감정을 느낀다는 걸 그 전엔 이정도로 느끼진 못 했거든요. 


그러다보니, 아이러니하게도 그림일기로 공개할 수는 없는 나만의 기억이나 감정들에 대해서도 더 솔직해지는 저를 마주했습니다. SNS에 공개하다보니까 너무 남기고 싶은 커다랗고 복잡한 감정이나 기억이 있어도 표현할 수 없는 날들이 있었는데요. 그런 날은 다른 기억을 그림일기에 담고, 저만 간직할 일들을 좀 더 생생하게 마음에 남기게 되더라고요. 놀라운 일이죠. 


30일 프로젝트는 11월 30일로 끝났지만, 저는 앞으로도 그림일기를 남겨보려고 합니다. 그림 솜씨는 여전히 서툴고, 글씨도 날마다 뒤죽박죽이지만요. 사는 게 다 그렇게 매일이 처음같고, 모든 사건이 처음이고, 모든 감정이 처음이고, 서툴고, 어색하고, 어떤 날은 잘 되다가 어떤 날은 잘 안 되고, 매일이 같은 나인데도 어제는 마음에 들었다가 오늘은 마음에 안 들기도 하고, 다 그런 게 아닐까싶어서요. 


- 당신의 오늘이 궁금한 이승아 드림

매거진의 이전글 TMI가 필요한 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