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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아 Aug 19. 2015

갑자기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 것 같이 당황스럽고 두려워

새 안경을 맞췄다

몇 년만에 새 안경을 맞췄다. 며칠 전에 엄청 마음에 드는 안경을 발견했었지만 55만원라는 어마어마한 가격에, 결국 포기하고 우여곡절 끝에 적당한 가격의 전혀 뜻하지 않은 디자인의 안경을 사게 됐다. 내가 정말 이런 모양의 안경을 쓸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아직도 좀 부끄럽고 어색하다. 


이상하게 요즘 좀 안 보이고 그랬다. 원래 시력이 나쁘진 않지만 난시가 심해서 사실 그냥 그런가 보다 했었는데 시력이 엄청 안 좋아졌던 거였다. 엄마가 알기라도 하면 기겁할 수준으로 시력이 떨어졌다. 게다가 난시도 까다로운 각도라고 이러쿵 저러쿵 설명해줬는데 사실 뭔지 잘 모르겠다. 여하튼 컨디션에 따라 시력 차이가 많을 눈은 맞다고 했다. 안구건조증도 심하고.


그렇게 새로 맞춘 안경을 쓰고 나왔는데, 이게 영 이상한 거다. 술 취한 것보다 어지럽고 자꾸만 넘어질 것 같았다. 교정시력 제대로 나오게 하려면 더 어지러울 것 같다고 0.8 정도에 맞췄는데도 너무 어지러웠다. 확실히 세상이 또렷해졌는데, 높낮이가 영 이상한 거다. 땅이 자꾸 싸움 거는 것 같은 게 꼭 술 취한 기분이었다.


원래 잘 안 보이면 굳이 안 보이는걸 억지로 보지는 말자, 안 보이는 대로 살자는 주의였어서 좀 덜 보여도 고민 없이 지내왔었다. 그렇게 '잘 안 보이는' 세상에서 너무나 잘 보며 익숙해져 온 나는 더 잘 보이라고 쓴 안경 때문에 순식간에, 너무나도 순식간에 위험한 길거리를 걷게 된 거다. 우스운 일이다.


금방이라도 넘어질까봐 무섭고 마치 안경이 날 공격이라도 할 것처럼 겁이 난다. 모든 게 낯설고 무섭다. 갑자기 누군갈 좋아하게 된 것 마냥 당황스럽고 두렵다. 이래도 되는 건가 싶다. 이 안경 나 계속 써도 되는 걸까. 익숙해져야 할 텐데 자꾸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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