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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Dec 13. 2016

#[덴마크] 칼스버그

혼자 한 잔이 필요할 때.


형 술 한잔 하자!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사촌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다음 주에 군대에 가니 얼굴을 보러 오겠단다. 군대 가기 전에 나를? 우리가 그리 가까운 사이었나 싶었지만, 지난 세월을 되돌려보면 멀지도 않다. 어린 시절엔 한 마을에서 5년을 같이 살았고, 매년 명절마다 봤으니 이 정도면 매우 가깝다. 초, 중, 고를 같이 나왔어도 결혼식에도 초대하지 않은 동창 녀석보단 훨씬 친할 것이다. 그래도 따로 연락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으니 감회가 새롭다. 짜식, 기특하구먼.

 처음으로 그 녀석과 술을 마셨다. 형 행세 좀 하겠다고 소고기집을 데려가 소주를 각 두 명씩이나 마셨다. 그동안 멀었던 서로의 과거를 훑었다. 고깃집에서 나왔을 땐 친 형제 못지않은 상태가 되었다. 소주의 힘이 이렇게나 강하다. 20년의 세월을 단 두 시간 만에 앞질렀으니.

 동생을 보내고 집에 오니, 목이 말랐다. 오래간만에 마신 소주 때문인지, 가족애 때문인진 모르겠다. 냉장고를 여니 물은 없고 온통 맥주뿐이다. 어휴, 맥주를 즐긴다지만 이건 아니지 싶다. 바르게 줄 서 있는 네 캔의 맥주 중 [칼스버그]가 눈에 띈다. 온통 초록색으로 칠한 몸통이 소주병과 닮아서 일까. 딱히 고민 없이 집었다. 그리고 크게 세 목음을 들이켜자 그간 맡지 못했던 향이 난다. 진한 소맥의 향기가.


 2년 전 유행한 드라마 중 '미생'의 청과장이 생각났다. 그는 회사원들과 진한 회식 후에도 집에 돌아와 혼자만의 술잔을 기울였다. 술을 진탕 먹고서도 왜 그리 술을 먹냐는 질문에 그가 답했다. 


남들 기분 맞춰 주며 술 마시다 보면 혼자 빤스 입고 한 잔 하는 게 그리워요

  라거는 특유의 향이 존재한다. 밀 향이 강하다지만, 한 모금 들이킨 뒤 내 쉰 향은 소맥의 그것과 가깝다. 충분히 호불호가 갈린다. 그럼에도 깔끔한 목 넘김과 가벼운 향이 맘에 든다. 소주 한 잔 후, 홀로 나와 마무리하기 위해 마시는 술로는 제격이다.

 칼스버그는 딱 그런 맥주다. 피할 수 없는 술자리, 사람들과 부딪기며 시끌벅적 술자리를 가진 후 나만의 술자리가 필요할 때. 지친 하루 뒤 나를 위로한 한 잔이 필요할 때 찾고 싶은 맥주. 한 껏 취하고 싶은 날 보다는, 깔끔하게 하루를 정리하고픈 날 먹는 맥주. 오늘도 수고했다고 말해주는 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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