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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Jul 27. 2017

무엇이 되기를 포기했을 때

 


 차 좀 빌려주세요.

 뭐하게

 생각 좀 하게요.

 그래 알았다.


그게 끝이었다. 그래 알았다, 를 뒤로 뭉툭한 키 하나가 손위로 던져졌다. 평소 같아선 "대학생이 무슨 차야!" 했을 텐데, 웬일인지 가만히 키를 던져 주고는 "기름은 네가 넣어라"하셨다. 한 평생을 같이 살았지만 언제나 알 수 없는 부모님이셨다.

 그렇게 09년 식 SUV에 고등학교 때 산 12인치 돕소니안 망원경을 싣었다. 망원경은 누가 '저건 보일러 온수통 아니야?'하고 물을 만큼 길고 뚱뚱했다. 트렁크에 들어갈 리가 없었다. 30kg에 달하는 이 거대한 짐덩어리를 뒷좌석에 가로로 꽉 채워 넣고는 그대로 여행길에 올랐다. 유난히 뜨거웠던 대학교 3학년 여름이었다.


 

 해가 스멀스멀 기어가, 가로등과 교대할 때쯤 집을 나섰고, 이른 아침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한 두 명 버스에 오를 때쯤 돌아왔다. 가평으로, 순천으로, 여수로. 별이 보일만한 곳이면 어디고 다달아서는 망원경을 폈다.

 별을 보겠다며 찾은 곳은 하나같이 어둡고 외졌다. 부엉이와 소쩍새만 낯선 이에게 말을 걸었다. 섬뜩할 때도 있었지만, 방학이었고, 고맙게도 그 젊고 창창한 시간을 함께 해줄 친구 한 두 명이 늘 조수석을 채웠다.

 흐드러진 밤하늘 아래 시커먼 청년 둘이서 별을 훔쳤다. 안드로메다 은하를 보며 "우와 이게 이렇게 보여?' 감탄했고, 눈 앞에 은하수를 두고는 "저건 구름인가?", "연기 아니야?" 했다. 으슥한 산길 아래서 삼킨 컵라면만큼이나 조촐한 지식 탓이었다.

 그렇게 주린 배를 채우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에게서 내어진 것은 환호 대신 한숨이었다. '확신'보다는 '혹시'에 가까웠다. 세상에 두려울 것 없을 만큼의 젊음을 이고도, 무엇이 그토록 불안했을까. 어떤 고민이 두어 시간 차곡히 담은 밤하늘보다 깊었던 것일까.




 나는 정말
천문학자가 하고 싶은걸까?

 

 스위스에서 그 진한 은하수를 보고 온 뒤 밤하늘에 대한 열망은 더 뜨겁게 타올랐다. 우주의 장엄함 앞에 작아진 나를 느끼며, '연구해도 되는 것인가'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만 그 일은 여전히 환상적이었다. 군 제대 후 성적도 점점 좋아졌고, 이대로만 하면 무엇이 돼도 되겠다는 자신감도 들었다. 초롱한 별 빛 아래서 한 평생을 보내겠다는 바람은 단단했다.

 그런데 별 빛 아래서 보내는 위치가 꼭 천문학자여야만 하는가 싶은 마음이 스쳤다. 공부가 즐거웠지만 노는것 만큼은 아니었고, 학문에 자신이 있었지만 '평생' 하고싶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맛있는 음식을 좋아한다고 해서 꼭 요리사가 될 필요는 없었다. 요리가 즐겁다고 해서 식재료를 직접 경작할 필요도 없고, 다이어트가 필요하다고 해서 영양학을 공부할 필요는 없었다. 어떠한 행위가 즐겁고 필요하다해서 근원적인 원리까지 알아야 하는것은 아니었다. 나는, 캄캄한 밤하늘을 위해 천문학자가 될 필요는 없지않은가 하는 물음을, 처음 꿈을 갖은지 딱 십년만에 떠올렸다. 그리고는 웬지 천문학자가 되지 않을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진정 되고싶은가, 하는 물음을 10년만에 던졌다. 10일동안 붙은 스티커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데, 10년 묵은 꿈이야 오죽할까. 왠지 그것을 포기하면 지난 10년을 잃는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것이 되지 않으면 꼭 포기하고 뒷걸음 치는것 같았다. 나는 그저 그것이 되고싶지 않아졌는데, 그런 마음을 갖는게 꼭 도망치는 것 같았다.

 무언가 되기를 포기했을 때, 나는 자괴감 비슷한게 들었다. 그 텁텁한 마음은 한 구석에 조용히 또아리를 틀고 눈을 껌뻑였다. 그리곤 이따금 말을 걸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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