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채를 두개씩
“자, 이제 시간이 됐다. 가자!”
이른 아침, 그의 목소리가 햇살보다 먼저 귓가에 닿았다. 함께 일하는 K 팀장이었다. 일식을 위해 떠난 미국 여행에서도 여지없이 단호했다. 그러면 잠이 덜 깬 남자 두 명이 주섬주섬 옷을 입는다. 가타부타 말도 없다. 그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의 신발 뒤를 쫓았다. 그리고 향하는 곳은 늘 한결같다. 테니스장이다.
그는 테니스에 미쳐있다. 매일 아침 테니스 레슨을 받는 것은 물론 하루에 서너 시간을 테니스에게 바친다. 연차를 좀처럼 쓰지 않는 그가 쉬겠다고 할 땐 , '아, 테니스를 오래 치고 싶은가 보다'하면 틀림없다.
취미로 치는 것도 모자라 한 달에 한 번씩 테니스 대회에 출전한다. 여행을 가도 테니스 라켓을 두 개씩 들고 다닌다. 누군가와 함께 테니스를 즐기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는 이번 미국 여행에도 라켓과 공을 두 세트나 챙겨 왔다.
그는 3년 내내 자신이 좋아하는 테니스 선수와 똑같은 테니스복을 입고 다녔다. 유니클로 로고가 가슴에 대문짝 만하게 달린 옷이었다. 구하기도 아주 힘든 옷이다. 누군가는 일부러도 피할 법한 큰 로고 옷을 어찌나 열심히 입고 다녔는지 소문도 파다하다. "저 사람 유니클로 직원인가 봐..."
어쩔 때 보면 그는 테니스 그 자체다. 테니스를 좋아하는 사람을 넘어서 테니스 인간이 된 것처럼 보인다. 덕분에 그가 어떤 말을 하든 그것이 테니스에 관련된 말이라면 아주 신뢰가 간다. "내년부터 테니스 복식은 세 명이서 친데!" 해도 말이다. 미친 정도는 그 분야에 대한 신뢰와 같다. 열광은 정성스러움과 신뢰를 품는다. 그래서 가끔은 그를 보며 떠올린다.
“사람들은 날 보며 무엇을 떠올릴까?
나는, 무엇에 미쳤다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