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을 두번이나!
똑같은 여행지를 다시 방문하는 일은 생각보다 큰 결심이 필요하다. 특히 그것이 해외여행이라면 더욱더. 귀한 주말과 연차를 몰아 쓰며 떠나는 여행이다. 재방송 같은 일상에서의 탈출인 만큼 '새로운 곳'을 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만 여행은 이번이 두 번째다. 여행에 재탕은 없다는 확고한 철학도 왕복 13만 원이라는 어마무시한 염가 티켓 앞에선 목소리를 낮췄다. 처음 대만을 여행한 뒤로 정확히 5년 만이었다. 강산이 딱 반쯤 변했을 시간이 흐른 후.
“이번에도 자전거 가지고 왔어~?”
“아니”
“왜?”
“이번엔 좀 쉬어야 할 것 같아서”
5년 전 여행에서 만난 대만 친구는 대만에 왔다는 말에 대뜸 자전거부터 물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는 자전거 여행을 했었다. 패기와 에너지로 똘똘 뭉친 날들의 분출이었다. 세계를 자전거로 돌겠다며 부푼 꿈을 가졌고, 볏짚을 베듯 여러 나라를 차례로 탐험했다. 손바닥 만한 안장 위에서, 하루 12시간씩 페달질을 뱉어낸 젊음이었다.
허나 이번 여행은 철저한 휴식이었다. 아무런 계획도 없었다. 장을 한 움큼 봐놓고는 하루 종일 tv를 보며 이따금 창밖을 바라본 날들이었다. 습하고 더운 대만의 낮에는 당하지 않겠다며, 해가 질 쯤에야 겨우 숙소를 나서기를 반복했다. 마치 대만의 공기만 마시겠다는 각오를 한 사람처럼 말이다. 휴식에 힘을 쏟다니. 고작 5년 전의 나와 사뭇 달라 보인다. 애마를 철저히 분해해 비행기로 싣고 다니던 시절과 침대 위에서 하루를 완벽히 분해하는 지금.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엔 꽤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주인공이 두 해 선배인 대학생 나가사와와 나눈 대화였다.
“나가사와 선배는 어떤 책을 좋아하는 데요?”
“발자크, 단테, 조지프 콘래드, 디킨스”
“별로 현대적인 작가는 아닌데요?”
“그러니까 읽는 거지. 남들과 똑같은 것을 읽으면 남들과 같은 생각밖에 할 수 없잖아. 그딴 건 촌놈이나 속물의 세계라고”
나가사와는 자신을 특별한 사람이라고 믿었고, 특별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가 독서에 집착한 이유이기도 했다. 심지어 사후 30년이 지난 '검증된 작가'의 책만 읽었다. 대단한 그의 독서량이 어째서 <위대한 개츠비>를 읽은 사람 하고만 친구를 맺는 편협함으로 이어졌는지는 우습지만.
어릴 적 나는 '나가사와'와 같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조건을 붙이며, 꼭 모험하고 탐험해야 훌륭한 여행이라며 스스로에게 편협함을 씌우지 않았을까. 모르긴 몰라도 '나는 이렇게 멋진 여행을 하고 있다고' 하는 자만심이 자존감 근처 어디쯤에 박혀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그 마음은 이번 여행에 의해, 스스로에 의해 와르르 부서졌다. 그날의 생각에 비추어 본다면 나는 아주 '형편없는 여행'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왜 이토록 즐거울까.
진리라고 믿어왔던 생각은 다른 생각을 마주하며 의심이 들거나 누군가에 의해 깨진다. 그러나 그것이 스스로의 경험으로 깨어지는 순간만큼 부끄럽진 않을 것이다. '진리'처럼 믿어왔던 것이 편협한 것임을 깨달았을 때의 부끄러움은 일부러 누가 벌을 주는 것처럼 얄궂다.
5년 사이의 나는 이만큼 다르고, 어떤 날의 내가 특별히 더 옳다고 믿지도 않는다. 그때도, 지금도 누군가에겐 쾌활한 여행객이, 스스로에겐 부끄럽지 않은 주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맛있는 여행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즐기겠다는 이야기다. 냠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