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가 수업 시작 전 총총 거리며 참새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리곤 돌돌 말린 봉지 하나를 수줍게 내밀었다.
"이게 뭐니~?"
"선물이에요! 그동안 감사했어요 쌤."
"선물!?"
오늘은 아이가 속해있는 '시리우스 팀'이 천문대를 졸업하는 날이었다. 자그마치 3년이나 함께한 아이들이었다. 헤어짐이 못내 아쉬워 졸업 선물을 준비했건만, 아이도 무언가를 품어온 것이다. 그 곱고 솔방울 만한 손으로.
요즘은 "코 질질 흘리고 다녔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컸어!?" 하는 어른들의 말이 부쩍 와닿는다. 유치원 티가 막 벗겨질 무렵 힘겹게 옥상으로 오르던 아이들이 훌쩍훌쩍 두 계단씩 오를 때 특히 그렇다. 3년이란 시간은 한없이 길다가도 '끝'과 함께 찰나로 다가온다.
"선물은 받은 자리에서 뜯어보는 게 예의래. 뜯어봐도 되지~?”
"네"
부스럭 부스럭.
"응!? 우와 이게 뭐야~ 선크림이네!"
"네 맞아요! 쌤, 잘 바르세요!"
순간, 무언가 낯선 느낌이 든다. 선크림이라. 선크림이라니. 아이의 선물은 휴지 한 장이던, 빵 한 조각이던 값어치가 있다. 그러나 선크림은 좀 다른 것 같다.
아이와 나는 한 번도 낮에 만난적이 없다. 마주친 적도 없다. 천문대 강사와 밤하늘을 배우려는 아이의 만남은 언제나 밤이었다. 석양도 남지 않은 한밤 중이었다. 그러니 아이에게 나는 '밤에만 만나는 선생님'일 것이다.
나는 음악 선생님의 체육활동을 생각해 본 적이 없고, 요리사가 밥을 사 먹는 것을 자연스레 상상하지 못한다. 버스기사가 승객으로 버스를 타는 것도, 마라톤 선수가 자전거를 타는 것도 무척 어색하게 그려진다. 당연한 삶의 단편도 역할에 따라 잘 상상되지 않는 것이다. 직업과 환경은 그 이외의 것을 쉽게 가린다.
그러니 밤을 사는 나에게 누군가의 '낮 선물'은 무척 특별하다. 아이의 정성이 천문대에 국한된 만남을 초월한 것 같아서, 쌓아진 시간이 자연스러운 시간을 넘어선 것 같아서... 별을 보여주는 선생님에게 내민 아이의 선크림이 낯설고 감사한 이유다.
아무래도 아이가 두고 간 것은 선크림이 아니라 관심이었나 보다. 낮에도 밤 선생님을 생각한 따뜻한 마음이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