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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Nov 20. 2018

우주가 그럴 리 없어.

아인슈타인과 우주 상수

"우주가 작아져야 한다고? 그럴 리 없어!"


 1917년, 아인슈타인은 고개를 저었다. 믿기지 않아서였다. 자신이 만들어낸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우주가 작아져야 했다. 하지만 본인은 우주가 고요하다고 믿었다. 평온하고, 정적인 우주를 생각했다. 우주는 커지거나 작아지는 변화는 그의 머릿속에 없었다. 자신이 만든 이론에 뒤통수를 맞았다.

 아인슈타인은 선택을 해야 했다. 상대성 이론은 수학적인 전개로 얻어진 것이다. 지극히 논리적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것을 만들어낸 본인은 생각이 달랐다. 그러니 논리를 따라 생각을 바꿀 것인지, 생각을 따라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낼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아무렴, 그럴 리 없지


그는 자신의 생각을 믿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직접 만든 바지가 짧다고 발목을 잘라낼 필요는 없다. 적당한 천을 덧대어 몸에 맞추면 될 일이다. 결국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에 손을 대었다. 방정식에 적당한 상수를 하나 넣어 그의 생각과 맞추었다. 우주상수. 억지로 밀어내는 힘을 만들어 넣은 것이다.

 논리적인 방정식에 비논리적인 그의 의지를 껴 넣자 우주는 고요해졌다. 적어도 그의 이론 안에서는 말이다. 그의 생각과 그의 이론은 비로소 같은 결이 되었다.


[르메트르]


우주는 팽창하고 있으며,
과거의 우주는 아주 작았을 것이다.


 벨기에의 사제인 동시에 유능한 천문학자였던 르메트르는 1927년 논문을 발표했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요지였다. 게다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기반으로 한 풀이였다. 르메트르의 연구는 아인슈타인이 우주상수를 도입한 지 꼭 10년째 되는 해에 던져졌다.

 아인슈타인은 기겁했다. 자신의 상대성이론을 풀어서 낸 결과가 '우주 팽창'이라니. 게다가 르메트르는 우주가 한 점에서 시작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까지도 말하고 있었다. 가모프가 빅뱅이론을 말하기 20년도 전이었다. 아인슈타인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다시 한번 선택을 해야 했다. 두 번째 기회였다.


아무렴, 그럴 리 없지.


1927년, 벨기에 솔베이에서 열린 학술제에 참석한 아인슈타인은 르메트르의 강연을 듣고 말했다. "당신의 계산은 정확하지만 물리학에 대한 이해는 끔찍합니다."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의 이론보다 생각을 믿었다.




 [허블]

윌슨산 천문대에서 관측을 하고 있는 천문학자 허블

 아인슈타인과 르메트르가 작은 신경전은 벌이는 사이, 천문학자 허블은 천문학계의 대스타로 떠올랐다. 안드로메다 은하가 우리 은하 밖에 있는 천체임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이 전까지 사람들은 우리 은하가 우주의 전부라고 믿었다. 허블이 우리 은하 밖의 천체를 발견하며 우주를 더 큰 세계로 확장시켰다.

 당시 허블의 인지도는 시골 사제 '르메트르'와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가장 핫한 천문학자였다. 게다가 언론을 다루는 대도 능숙했다. 르메트르가 논문을 낸 지 2년 만에 허블은 역사적으로 길이남을 논문을 던지며 말했다.


 우주는 팽창한다.


 르메트르와 같은 이야기지만 근거가 달랐다. 허블은 우주에 널리 뻗어있는 은하들을 관측하여 빠른 속도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더 먼 은하일수록 더 빨리 멀어지고 있다는 관측 자료는 명백히 우주가 커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과학에서 실험 결과는 절대적이다. 아무리 훌륭한 이론도 증거가 뒷받침되지 못하면 종이 쪼가리에 불가하다. 대부분의 노벨상은 훌륭한 이론을 증명하는 실험이 비로소 이루어졌을 때 수여된다. 김치찌개 끓이는 법을 백번 설명하는 것보다, 맛있는 김치찌개를 한 번 가져오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것과 같은 이치다. 단 한 장 짜리 허블의 논문은 전 세계를 충격에 몰아넣었다. 우주가 커진다니. 타임지 1면을 장식하는 것은 물론 당시 할리우드 스타들보다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아인슈타인에게 더 이상 선택권은 없었다. 그것은, 이론과 관념들 사이에 있었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과학자는 데이터 앞에 겸손해야 했다. 결국, 그는 허블이 있는 윌슨 산 천문대를 방문했다. 허블의 논문과 관측 데이터를 직접 들은 아인슈타인은 주저앉고 말았다. 훗날 그는 제자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우주 상수를 도입한 것은 내 인생 최대 실수였다네"



 아인슈타인은 지금까지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로 꼽힌다. 이스라엘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임될 만큼 영향력이 거대했다. 그러나 그를 더욱 빛나게 한 것은 과학적 자료 앞에서 덤덤히 꺾은 그의 고집이다. 몇 번의 실수를 했다 한들 그의 명성에 금이 갈만한 일은 아니다. 더구나 현재는 우주 가속 팽창의 발견으로 우주론 방정식에 우주상수가 다시 쓰이는 마당이니, 세상 참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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