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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Dec 06. 2018

별빛은, 추억이 될까?

"선생님, 요즘 채원이가 좀 아파요"

"채원이 가요? 어디 가요? 많이 아파요?"

"중학생이 되고 나서 많이 힘들었는지 우울증이 왔어요. 학업은 완전히 놨고 상담치료와 약물 치료를 함께 하고 있어요."

"이럴 수가... 그렇게 밝았던 채원이가..."


채원은 나의 오랜 제자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생이 될 때까지 함께 별을 봤다. 한 달에 한 번씩 4년을 만난 것이다. 그동안 채원이는 한 번도 우울해 보인적이 없었다. 너무 해맑아 주변에 긍정적인 기운을 주는 쪽이었다. '저렇게 퍼주어도 되려나' 싶을 정도로. 채원을 매 순간 만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별 빛 아래서는 그랬다.

 

"스트레스받지 않고 자라게 하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채원이의 어머니는 딸의 아픔에 가슴을 쥐었다. 이유 없이 다가온 큰 파도에 휩쓸린 듯 불안해 보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하나는 있었다.


"채원이 좀 데리고 천문대로 와주시겠어요? 함께 별 좀 보고 싶은데"


그렇게 채원은 친구들과 함께 천문대를 찾았다.

채원 쪼쪼쌤!!"

쪼쪼쌤 채원아! 뭐야, 키가 왜 이렇게 큰 거야!"

채원 헤헤 이것 봐요. 제가 까치발 서면 쪼쪼쌤하고 똑같아요"

쪼쪼쌤 무슨 소리야, 그래도 선생님이 훨씬 크지"

채원 에이~ 쌤 키 몇 인 대요!"

쪼쪼쌤 180cm.... 에 가깝지...!"

채원 거 봐요~ 저 169cm가 되었다고요, 많이 컸죠!?"


채원은 중학교 2학년이 되었지만 처음 만난을 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했다. 여전히 밝고 긍정적이었다. 얼굴 어디에서도 우울함을 찾긴 어려웠다. 아마도 마음 깊숙한 곳에 곯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애써 숨기며 거친 숨을 허덕이고 있을 것이다. 떨어지는 낙엽만 보아도 꺄르르 웃음이 터질 때에 상처마저 숨겨야 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쪼쪼쌤 채원아, 오랜만에 우리 수다는 그만 떨고 이제 별 보러 나갈까?

채원 별이요? 안 보면 안돼요?

쪼쪼쌤 왜? 싫어?

채원 네, 오늘은 안 보고 싶어요.

쪼쪼쌤 응? 그럼 천문대에 왜 왔어!

채원 쌤이 있잖아요! 오늘은 별 말고 쌤 보러 왔으니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우리는 길고 검은 패딩을 쌍둥이처럼 차려입고 망원경 앞에 선다. 구름 사이로 흐르는 멋진 별들을 바라보며 숨을 몇 번 고른다. 천천히, 그리고 깊은 밤하늘로 또각또각 걷는다. 차가운 렌즈에 눈을 몇 번 댔다 떼는 동안 채원이의 표정의 오묘하다. 그리고 돌아서기 전, 한마디를 한다.

채원이가 선물한 캘라그라피


쌤, 최근 들어 오늘이 가장 행복했어요. 감사해요.


 우리는 선생과 제자다. 더 정확히는 함께 별을 보는 사이다. 매일도 아니다. 일주일도 아니고, 고작 한 달에 한 번씩이다. 아이들과 그 큰 간격을 두며 나는 늘 고민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한 달이라는 간격 사이로, 이렇게 뜸하게 만나는 선생님도 누군가에게 힘이 될까? 하는 걱정이 우악스럽게 지났다.

 채원이는 집으로 떠나며 언젠가 또 보자고 말했다. 나는 그 언젠가가 그리 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인연은 별과의 사이보다 훨씬 가깝고, 아무리 뜸해도 우리는 별을 보는 사이니까. 밤하늘 아래 서면 언제나 우리는 서로를 생각할 테니까. 

 집에 돌아와 쓰러지듯 누웠다. 날씨가 추워질수록 별 보는 일은 더 녹록지 않다. 그렇지만 어느 날 보다 쉽게 잠에 빠졌다. 그 순간에도 채원이의 말은 온 방안을 가득히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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