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는 악필이라던데,

나는 천재가 아니니...

by 조승현

나는 악필이다. 글씨를 더럽게 못쓴다. 아니 더럽게 쓴다. 학창 시절부터 그랬다. 공부를 못하는 편이 아니었는데도 필기는 늘 엉망이었다. 대학 때 같이 수업을 듣던 선배가 내 노트를 빌린 후 말했다. “필기를 뭘로 한 거야? 발이야?”.

얼마 전엔 이런 일도 있었다. 출간한 책에 싸인을 200권 정도 할 기회가 생겼다.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겠다며 일일이 싸인을 부탁받았다. 간단히 싸인만 하려다, 그래도 따뜻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간단한 문장을 넣기로 했다.


'별빛 아래서 아이들이 늘 행복하기를'


나름 가슴 따뜻한 문장이라며 뿌듯해했는데, 나의 필체를 아는 J의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아니, 조 작가님한테 문장을 쓰라고 하면 어떡해요! 글씨 더럽게 못쓰는데, 싸인만 부탁하지!”. 나름 작간데... 글씨로 철저히 까였다.

디지털 시대에 글씨 좀 못쓰면 어때, 싶지만 악필이 강사가 되었을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판서를 할 때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아이들과 하는 수업은 판서가 꽤 중요하다. 적당한 글씨를 알맞게 써주어야 한다. 그러나 악필 강사는 아랍어 같은 글씨를 쓰고 앉았다. 열심히 노력하며 써도 아이들이 종종 묻는다. “쌤, 저건 뭘 그리신 거예요?”. 그리다니, 분명 글씨를 썼다. 그럴 때면 ‘차라리 그림을 그릴까?’ 싶지만, 그림 실력이라고 뭐 특별히 다를까. 나는 공룡을 쥐처럼 그리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


어느 날 아이들과 수업을 하던 중이었다. 열심히 판서를 하는 내게 채원이가 짜증을 섞어 말했다.


“쪼쪼쌤, 도대체 뭐라고 쓰시는 거예요!”

“응? 못 알아보겠어?”

“그걸 말이라고, 차라리 애기들처럼 써보세요!”

“애기들처럼 쓰라니?”

“이렇게요!”


채원이는 내게 초성을 크게 써보라며 몇 자를 성의 없게 적었다. 이른바 왕머리 글씨체였다. 처음 봤을 땐 머리가 몸통만 한 갓난아이가 떠올라 웃겼는데, 자꾸 보다 보니 귀여웠다. 세상에, 글씨 선물이라니.

그날 이후로 나는 왕머리 글씨체를 쓴다. 초딩 글씨체지만 악필로 보이진 않는다. 이보다 더 좋은 글씨가 있겠나 싶다. '악필도 인정한 글씨'라 말하면 아무도 신뢰하지 않겠지만.

귀엽(?)기를 바라며 쓴 손글씨.


keyword
작가의 이전글대장님이라고요? 햄토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