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승현 Apr 22. 2019

우주에 다녀오셨어요?

 막역한 의왕 천문대 대장님과의 일화다. 천체 사진 촬영이 취미인 신대장님은 종종 자신이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신다. 나사에서 훔쳐온 것 같은 퀄리티를 보고 있자면 그저 넋이 나가버린다. ‘이 사진이 지구에서 찍은 거라고?’. 갑자기 몸이 붕 뜬다. 눈 깜짝할 새에 지구 밖 공간에서 우주를 바라본다. 89년생은 미처 태어나기도 전에 대학을 들어간 82학번의 사진을 바라본다. 처음 봉골레를 먹었을 때보다 더 깊은 감탄이 흐른다.
 
우주에 다녀오신 건 아니시죠?

우스갯소리로 묻자 대장님은 부끄러운 미소를 지셨다. “우주에 나가라니, 곧 죽으라는 얘기 구만” 하고 너털너털 웃으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신대장님이 다녀오신 곳은 우주가 아니라 수피령이었다. 차를 타고 왕복 다섯 시간은 가야 하는 강원도의 산 골짜기. 깊은 곳에 위치한 수피령은 은하수도 관측이 가능하다. 다만 깊은 만큼 웬만한 승용차로는 엄두를 내기 어렵다. 산세가 험하고 깊어 차체가 높은 suv를 타야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자동차의 바닥은 지압판을 밟는 할아버지의 발바닥처럼 한껏 상할 것이다. 신대장님의 차가 suv인 이유도 수피령에 가기 위해서가 아닐까.
 영하 20도를 가볍게 웃도는 곳에서 대장님은 동이 틀 때까지 사진을 찍었다. 하늘만 맑다는 날이면 한 달에 몇 번이고 차를 몰았다. 서른도 밤을 새우면 눈이 침침할 법인데, 두배의 연세에도 걱정하는 것은 몸이 아니었다. “내가 피곤하고 추운 건 견디겠는데, 추우면 카메라 배터리가 빨리 닳는단 말이야”. 그러시곤 배터리 핫팩을 먼저 챙기셨다.

 별 보기 좋은 곳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89년생인 나는 한 번도 가지 못했건만, 82학번의 대장님은 이삿짐 같은 짐을 이고 달리셨다. 왕복 다섯 시간의 거리를 뜬 눈으로 지새고 나면 여지없이 우주에서나 찍었을 법한 사진이 들려 있었다. 환갑을 앞둔 나이에도 밤을 새우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미칠 수 있는 열정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잠이 안 와 지새운 수많은 날들을 주욱 늘어놓는다. 하나하나 꿰듯 길었던 새벽을 돌아본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 밤을 새운 날들이 있었던가. 없다. 멀뚱히 유튜브나 보고 앉아 있지 않았던가. 나는, 무엇에 정통한가. 신대장님은 사진에 관해 이렇게 말하셨다.


“사진은 빛의 농담[짙음과 옅음]이야. 수려한 대상보다 빛을 어떻게 담느냐를 고민해야 좋은 사진이 나올 수 있어”


 무언가에 정통하기 위해서는 좋은 스승도 필요하고 비싼 장비도 중요하다. 적당한 차도 가지고 있으면 좋다. 시간을 여유롭게 쓸 수 있는 직업이면 더할 나위 없다. 대장님을 보고 느낀다. 그런 것보다는, 역시 열정이구나. 나의 열정은 어떤 농담을 지니고 있을까.

신정욱 대장님이 찍으신 사진들



매거진의 이전글 때깔이 달라 때깔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