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그림자

고마워.

by 조승현


여러분, 달그림자 좋아하세요? 하고 물으면 “달그림자가 뭔가요?” 하고 답이 돌아올 것 같다. 혹은 “달그림자를 좋아하고 말 게 있나요?” 할런지도 모르겠다. 이른 아침 출근길에 오르고, 팍팍한 하루를 살아가는데 달그림자는 도통 낄 순간이 없으니까.
나는 달이 좋다. 달그림자는 더 좋다. 달그림자는 간단하다. 해가 만드는 그림자처럼, 달이 만드는 그림자를 말한다. 반달 이상으로 달이 높이 뜬 날 주변이 어둡고 달 빛만이 우리를 비춘다면 우리 몸으로부터 이어진 흐릿한 그림자 하나를 볼 수 있다. 그것이 달그림자다.

중국의 시인 이백도 달그림자를 사랑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시인 <월하 독작-달 아래서 홀로 술을 마시다>에도 달이 등장한다.



꽃 사이에 술 한 병 놓고

친구도 없이 홀로 마신다

잔 들어 밝은 달 맞이해 오니

그림자 짝하여 세 사람이 되었네


고독한 이백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술잔 속에 비친 달과 자신의 달그림자를 친구로 삼았다. 그가 강 위에 홀로 앉아 그림자와 잔을 부딪치는 상상을 한다. 이백이 무슨 병으로 죽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강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 물속으로 뛰어들어 익사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질뿐이다. 낭만적이고도 안쓰럽다.

달그림자는 언제나 말없이 깊은 산속에서 청청하다. 가끔 한 번씩 도시로 나오긴 하지만 여간 쉽지 않다. 도시엔 꺼지지 않는 불빛이 많기 때문이다. 24시간 쉴 새 없이 바코드를 찍어내는 편의점의 간판도 있고, 새벽에도 30분이면 따끈한 치킨을 안겨주는 감격스러운 배달부의 오토바이 불빛도 있다. 인류 스트레스의 근원인 야근하는 사무실의 빛도 달을 방해한다. 내가 달이었다면 “으윽”하고 소리 내며 내 빛이 사라지는 광경에 슬퍼했을 것 같다. 왠지 서글프지 않은가. 우주 공간에서 홀로 지구를 수호하며 모든 힘을 쏟아 반사한 태양 빛이 고작 60와트짜리 백열등에 묻힌다니.

가로등도 없는 시골길에서 달을 만나면 우리는 쉬이 달그림자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한 밤중 세 번이나 긴급신호를 보내도 응답 없던 경찰의 ‘24시간 증인 보호 프로그램’보다 더욱 안심이 된다. 꽤 밝기 때문이다. 밤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인 시리우스보다 40만 배나 밝다. 그래서 어두운 길을 혼자 걸을 때 하늘을 올려다보면 제법 안심이 된다.

어렸을 적 겁쟁이 었던 나에게 별을 볼 수 있도록 해 준 것은 달그림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 정도로 밝은 달이 떴다는 뜻이니까. 별로 밥을 벌어먹고 사는 입장에서 달그림자에게 식사라도 한 끼 사고 싶다. 그러면 이백처럼 술 한 잔 기울이며 고맙다고 말하련다. 덕분에 먹고 산다고.



작가의 이전글양말은 어디로 간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