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런 사람도 있다
가끔 안경을 쓴다. 눈이 그리 나쁘진 않기에 작은 글씨나 화면을 볼 때만 쓴다. 불행하게도 나는 21세기 4차 산업 혁명 위에 있는 청년이고, 핸드폰과 아이패드, 노트북이 번갈아 눈앞을 채운다. 결국 안경도 하루 종일 쓴다.
하루는 코가 찔리듯 아팠다. 안경을 벗어서 보았더니 코받침 한쪽이 깨져 있었다. 안경을 썼을 때 코에 닿는 평평한 플라스틱 부분이 코받침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야 코받침이 한쪽만 깨지는 것일까. 내 코뼈의 오른쪽 면만 단단한 걸까. 함께 사는 고양이가 "요즘 간식을 안 주다니, 집사 놈 버르장머리를 고쳐놔야겠어" 하고 한쪽만 깨문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연약한 렌즈 대신 코받침이 깨진 이유를 알 수 없다.
옥수수 한 알 만한 그 코받침이 뭐라고 안경은 코 위를 떠돌았다. 달 위의 우주선처럼 둥둥 뜨며 이따금 코를 찔렀다. 밥을 먹으려 고개를 숙일 땐 코를 긁으며 내려왔다.
온 신경이 콧등에 몰렸다. 도대체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지옥불 위에서 먹어도 맛있을 것 같았던 제육볶음의 맛이 기억나지 않았다. 헬스장에서도 안경을 치켜세우느라 근육 대신 콧등에 힘을 줬다. 그날 먹은 단백질 보충제는 미간을 키우는데 쓰였을 게 분명하다. 유튜브를 볼 때도, 업무를 할 때도 감각은 콧등 위에서만 분주했다. 코받침은 블랙홀처럼 작은 몸으로도 하루를 삼켰다.
얼른 코받침을 고쳐야 했다. 물론 나에게 코받침을 고칠 기술은 없었다. 개인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시대정신에 빗대 보자면, 역시 전문가를 찾는 게 옳았다. 안경점으로 향했다. 2000원을 내밀자 사장님의 손이 미끄러지듯 안경으로 향했다. 단 5분 만에 코받침이 부활했다. 비로소 나의 하루도 되살아 났다. 작지만 가치 있는 것을 꼽으라면 다이아몬드 다음은 역시 코받침이다.
"형, 나는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응? 뭔 소리야"
"하고 싶은 게 없어. 형이나 누나는 늘 이것저것 잘 해내는데 나는 대학도 못 가고, 잘하는 게 없는 것 같아."
11살 차이 나는 막둥이 동생은 어느 날 잘하는 게 없다고 털어놓았다. 즐거운 고백은 아니었다. 널브러진 동생의 메모를 주운 누이 역시 충격을 받았다. 그 속에는 평생 형과 누나에게 비교당하며 살아온 우울함이 담겨있었다.
부모님은 막내를 타이르는 용도로 늘 나와 누이를 사용했다. 형, 누나는 너보다 훨씬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왜 그러니. 형, 누나는 대학교 때 홀로 여행을 떠났다. 그러니 너도 혼자 해 버릇 해. 형, 누나는 꿈이 있는데 도대체 네 꿈은 뭐냐. 동생은 언어의 망치질로 점점 작게 쪼그라들었다.
의도치 않게 훈계의 도구로 사용되었지만, 나와 누이는 억울함 대신 미안함이 더 컸다. 만약 내가 그 소리를 듣고 자랐더라면 어땠을까. 목을 맸을 것이다. 아니다. 그것은 자살이다. 하지만 역시 목을 맸을 것이다. 평생을 억압과 비난받으면서 살 자신은 없다. 그러니 동생은 나보다 훨씬 단단한 사람이다.
키는 작지만 가정의 평화를 한 순간에 삼킬 만큼 영향력 있는 사람은 그다. 동생이 없으면 우리 집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환갑의 언저리에 있는 나이 든 부부의 싸움을 중재할 아들도 없고, 병으로 언어를 잃으신 할아버지의 친구 역할도 없다. 나 역시 집을 나와 살며 '추석과 설 중 한 번만 가겠다'는 망언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동생과 상관없이 나쁜 아들인 것 같아 찔리긴 하지만).
사춘기는 또 어떻고, 그 뾰족하고 가시 돋은 시기에도 동생은 말썽이 없었다. 집안의 반란군이 되어 언쟁이 삶의 목표인 것처럼 전투적이었던 나와는 달랐다. 만약 동생도 그랬다면 우리 가정은 무너졌을 것이다. 치매가 온 할아버지와, 황혼에 뾰족한 부부와, 집에는 관심 없는 남매같이 부실한 기둥은 뜨거운 사춘기의 공격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고3의 예민한 시기에도 가정을 지켜낸 건 동생이다.
큰 줄 모르고 움츠리며 살아가는 동생을 바라본다. 형의 무게가 흐릿해질 정도로 함께 나이 들면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너는 정말 코받침 같은 사람이었어." 존재에 관한 한 우리는 모두 놀랄 만한 역할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 든든하다고, 덕분에 내 삶의 한 기둥이 튼튼했다고. 코받침 같은 사람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