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두 눈엔 별빛이 담겼고
별빛이 반짝이는 밤이었다. 봄이었고 날이 따스했다. 덕분에 늘 하늘엔 구름이 피었는데 그 날은 유난히 맑았다. 간만에 로봇 같은 돔이 천장을 열었다. 수백 개의 별들이 빛을 쏘아댔다. 세상 어딘가에 있을 슬픔들도 조용할 만큼 평화로운 하늘이었다.
그러던 사이 부고가 날아들었다. 안산 천문대에 있는 지인의 부친상이었다. 딱딱하고 차가운 연락이었다. 부고란 것은 마치 먹구름 같아서 늘 벼락같이 내리친다. 불빛에 화들짝 놀란다. 몇 번 호흡을 가다듬을 때쯤엔 천둥 같은 슬픔이 쿠구궁, 하고 밀려든다. 그제야 누군가의 슬픔에 접근한다. 다른 이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필 금요일이었다. 천문대는 금요일과 토요일에 가장 바쁘다. 다음날이 휴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늦은 밤 별을 품고 다음날 걱정 없이 쉴 수 있는 주말은 선호한다. 그래서 천문대는 이때 붐빈다. 사람들이 걱정 없는 날, 천문대는 걱정이 많다.
그런 날 부고가 날아든 것이다. 별빛을 눈에 담은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면 밤 12시다. 천문대는 그때서야 문을 닫는다. 그 안에 일하는 나도, 다른 동료들도 그제야 천문대를 나선다. 비로소 누군가의 슬픔에 다가설 수 있다.
"인천이면 여기서 1시간도 넘게 걸리는데, 그러면 새벽 1시에 도착하는 거잖아."
"장례식장에 계신 사람들도 쉬어야 할 텐데 너무 늦은 시간이려나요?"
"그래도 가보자"
"다른 천문대 사람들은 못 오겠죠?"
"금요일 밤이잖아. 많이는 못 오겠지"
"그렇겠죠? 다음 날 또 바쁘니까"
"그래, 우리라도 가자"
동료들과 쓸쓸한 마음으로 장례식 장으로 향했다. 달이 없는 밤이었다. 하늘이 민둥산 처럼 허전했다. 검은색 자동차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도시의 불빛과 만나며 흐드러졌던 별도 자취를 감추었다. 누군가의 마음처럼 빛이 뜨지 않았다.
장례식에 도착했다. 가만히 신발을 벗고 상주와 마주했다. 두 번 반 절을 했다. 지인이 내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몇 번의 토닥임이 몇 마디의 말보다 나았다.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늦은 인사를 마치고 돌아서자마자 나는 화들짝 놀랐다. 장례식장이 가득 차 있었다. 전국에 뻗어있는 20여 개의 천문대에서 100명도 넘는 사람들이 왔다. 그 많은 사람들이 새벽 한 시에 저마다의 위로를 가지고 앉아있었다. 양복을 입은 사람, 검은 옷을 입은 사람, 청바지를 입은 사람, 후드티를 입은 사람. 슬픔을 위로하는 데에 복장은 구분이 없다. 옷 보단 마음이 예쁘니까.
"당연히 가야지"
장례식장으로 출발하기 전, 말은 그렇게 뱉었지만 사실 힘들었다. 가장 고된 하루를 보낸 날이었다. 장례식을 떠올리며, '하필 주말이네' 하고 아쉬워했다. 버겁다고 느낀 것이 맞을 것이다. 집에 눕는 순간을 공항에 들어서는 것처럼 설레며 기다린 하루다. 부끄럽지만, 누군가의 슬픔 위에도 내 몸뚱이가 먼저 떠올랐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별을 보는 사람들이다. 같은 일을 하며 같은 하루를 보냈다. 그러니 적어도 몇몇은 나처럼 안간힘을 쓰고 왔을 것이다. 고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또 거친 하루를 남겨놓은 밤에 인간적인 욕심이 들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억지로 신발을 꺾어 신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모두가 이겼다. 슬픔을 나누려는 마음이 발을 잡고 있는 지구의 중력을 이겨냈다. 결국 모인 것은 따뜻한 마음들인 것이다. 누군가의 슬픔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내려놓는, 감사한 사람들과 함께 있다. 이것은 복이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싸움을 해야 한다. 누군가의 슬픔과 내 체력을 비교해야 하고, 이별의 아픔과 방문의 귀찮음이 싸워야 하고, 인연의 소중함과 내 시간의 귀함이 다툴 것이다. 그런 싸움을 이겨 내는 사람들이 옆에 있다. 그들 옆에서 나도 미소가 되고 싶다.
별빛이 반짝이는 밤이었다. 봄이었고 날이 따스했다. 누군가의 마음엔 구름이 피었는데 그 날은 유난히 맑았다. 간만에 사람들과 만나 마음을 열었다. 수백 개의 별들이 빛을 쏘아댔다. 세상 어딘가에 있을 슬픔들도 조용히 자리를 떠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