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압일땐 고기앞으로
직장 동료들과 스위스 고산지대에 머물었을 때였다. 삼일을 머물렀고, 삼일 내내 비가 왔다. 먹구름이 경주하듯 산 위를 빠르게 움직였다. 산안개는 매 순간 춤을 쳤다. 흐릿한 시선 사이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산맥과 어우러졌다. 비 오는 알프스의 풍경은 완벽했다. 문제는 그곳에 별을 보러 떠났다는 거다.
은하수를 보려고 떠난 여행이었다. 산 좋고 물 좋기로 유명한 스위스 '뮈렌'에 가기 위해서 비행기에 올랐다. 12시간을 날아 런던에 도착했고 세 시간을 더 기다려 제네바행 비행기로 갈아탔다. 그 뒤로도 차와 기차를 번갈아 타야 했다. 헨젤과 그레텔이 따로 없었다. 별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쿠키 같은 시간을 길 위에 뿌렸다.
그런데 비가 온 것이다. 맑은 하늘을 기대한 곳에 비라니. 시커먼 구름이 뮈렌을 거쳐 내 마음에 드리웠다. 빛을 피해서 이곳까지 왔지만 비는 피하지 못했다.
원망스러운 하늘을 바라보았다. 빗방울이 얼굴에 부딪혀 눈물처럼 떨어졌다. 환상적인 은하수를 기대했던 우리는 졸지에 망연자실해졌다. 수백만 원과 수십 시간을 써서 도착했다. 핸드폰 카메라가 1200만 화소를 넘는 시대에도 뚱뚱한 DSLR을 챙겼다. 삼각대와 레이저도 캐리어 한쪽에 늠름했다. 수려한 별 사진을 기대하며 싼 짐이었다. 한여름에 챙긴 두터운 옷은 또 어떻고. 준비물은 화려했지만 쓰임새는 초라했다.
별 소득 없이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스트레스가 차올랐다. 우리는 모두 맥이 빠졌다. 그러다 저녁시간이 되어 마트에서 소고기 등심을 사다가 구웠다. 빗방울로 가득 찬 스위스의 산자락에서 등심을 구워 먹던 중, 느닷없이 A가 외쳤다.
"등심은 사랑이야!"
갑작스러운 선언에 모두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반쯤 눈을 감고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표정은 뭐랄까, 분유를 맛있게 들이켠 아기 같달까. 참고로, 그가 평생 먹은 고기 양을 따진다면 목장 하나는 거뜬히 없앨 것이다. 목장 파괴자의 살가운 표정을 본 우리는 포크를 집어 들었다. 접시에 던져진 6개의 포크가 등심을 소리 없이 조각했다. 어느새 모두가 목장의 나라에서 목장 파괴자의 웃음을 짓고 있었다.
등심 속 지방과 단백질이 미소의 재료가 되고 있었다. 사르륵 녹는 살점은 스트레스도 녹였다.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등심 한 점을 입에 넣어주며 말하면 된다. "이게, 사랑이란 거야."(찡긋)
A의 '등심 사랑 선언'은 별을 볼 수 없는 먹먹함을 한순간에 날려버렸고, 역시 동행하는 사람은 잘 먹고, 쉽게 행복한 사람이 최고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동행자는 나니까 나부터 잘 먹고 쉽게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이든 사랑을 선언할 줄 아는 용기도 가져야지 싶었다.
불운이란 것은 늘 철학적이고 거대한 스케일로 다가온다. 게다가 그런 문제들은 애써 고민한다고 해결되지도 않는다. 그러니 맞서 싸우며 골똘하기보단 둘레둘레 피해 가며 잊혀진 행복을 떠올리는 것이 좋다. 물론 행복을 부르기엔 고기 만한 것이 없다. '소확행'은 소고기가 주는 확실한 행복의 줄임말이 아닐까?
삶 속의 장애물은 앞으로도 꾸준할 것이다. 별을 보러 떠난 곳에서 구름 잔치를 할 수도 있고, 갑자기 튀어나온 상사가 마무리되가는 프로젝트를 뒤엎을는지도 모른다. 가장 친한 두 친구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결혼식을 할런지도 모르고.
장애물이 나타나면 곁눈질을 하자. 등심을 굽던, 딱새우를 먹던, 러닝을 하든 간에 각자의 행복으로 도망칠 필요가 있다. 나타난 장애물을 애써 노려볼 필요는 없으니까. 조금 돌아가면 되니까. 조금 더 돌아갈 에너지는 곁눈질로 얻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허락받을 필요 없이 안락한 곁눈질. 우리는 각자의 곁눈질에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