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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Apr 23. 2020

매일 우주를 만들 것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입금 전/입금 후로 불리는 사진 (c) 커뮤니티 boxden, 위대한 개츠비 포스터

"이게 같은 사람이라고?"


 디카프리오의 입금 전/입금 후라는 사진을 발견했다. 비포/애프터 사진을 번갈아보며 눈을 깜빡였다. 믿기지 않았다. 비포의 그는 고장 난 세면대에, 면도기는 박살 났으며, 태풍을 침대 머리맡에 갖다 둔 집에서 사는 게 분명했다. 그런 완성형 자연인이 단지 샤워, 면도, 패션만으로 위대한 개츠비가 되어버렸다. 

 이것은 불공평하다(거울을 보고 하는 말이 아니에요). 비포의 모습은 비슷한데 에프터의 모습은 영 달라 심술이 난 건 아니다(진짜예요). 살을 빼겠다며 닭가슴살을 아이스크림처럼 들고 먹는 내가 초라했다(살이 문제가 아닌 것 같아서요). 그렇다. 인정해야 했다. 사실 잘생겨서 부럽고 고급져서 샘이 난 게다.  

 귀티를 장착한 그는 더 훌륭한 사람처럼 보였다. 화장을 했다고 아내에게 따뜻한 말을 더 많이 하거나 기부를 더 많이 하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때론 성품보다 꾸밈으로 판단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아쉽지만 인간사가 아니겠는가. 연예인들이 비싼 돈을 주고 코디를 고용하는 이유다. 때와 장소에 맞게 꾸민 모습은 그들의 가치 평가를 결정한다. 


 밤하늘도 꾸며야 하는 줄 몰랐다. 별은 낭만적이니까, 별자리는 재밌으니까, 책에 떠다니는 백과사전 같은 이야기를 던져도 즐거워할 줄 알았다. 그러니 천문대 강사가 되어서 포격 같은 말이 아이들에게서 날아올 수밖에. 오늘은 왜 재미가 없어요? 쉬는 시간은 언제예요? 아까 본 별이 더 밝은데 이건 뭐하러 봐요?  

 같은 별자리도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느냐에 따라 듣는 이의 표정이 달라진다. 심오한 다큐처럼 접근해야 하는 별도 있고 막장 드라마가 어울리는 별도 있다. 물론 빵빵 터지는 예능감 넘치는 이야기가 있다면 최고다. 한 해에도 수없이 개편되는 방송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며 인기를 끌만한 이야기를 찾아낼 줄 알아야 좋은 강사다. 그러니 새로운 천체를 만나면 소매를 겆어 부치고 형사처럼 대화를 걸어야 한다.


"넌 누구니?"


  강의 준비는 기본적으로 취조다. 녀석의 외모, 특징, 과거와 현재 위치까지 빠짐없이 캐낸다. 즐거운 이야기가 있는지, 숨겨진 에피소드는 없는지 꼼꼼히 탐문한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질문도 꼼꼼히 물어본다.

"아, 네가 블랙홀이구나. 너는 뭐든지 빨아드린다고? 사람이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데? 아... 좀 잔인하네... 혹시 지구랑도 가깝니? 휴, 아니구나. 그래 그럼 네가 출연한 영화들 좀 쭉 불러봐. 우와, 이렇게나 많다고? 너 완전 스타네!" 

재미가 없는 별이 있으면 자료를 뒤적이며 말을 건네기도 한다.

"너는 뭘 하고 다닌 거야? 태양보다 1000배는 크면서 왜 이렇게 존재감이 없니? 아,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고?"


 인기가 없던 '고래자리'가 바다 괴물 케투스의 이야기로 인기를 얻고, 평범해 보이는 별이 곧 폭발해 보름달만큼 밝아질 거라고 하자 다시 망원경에 눈을 댈 때, 그 희열은 강의를 해본 사람만이 안다. 강사의 하루는 지식과 아이들을 끊임없이 연결해주는 과정이다. 별들은 꾸민 만큼 빛난다.

  이야기를 입혀주면 별이 더 빛난다니, 좀 멋진 일 아닌가. '내가 이야기를 들려주기 전에, 그 별은 다만 하나의 빛에 지나지 않았다'며 괜히 허세 가득한 말도 해보고 싶다. 고작 88개쯤 되는 별자리에도 맘만 먹으면 88만 개의 이야기를 입힐 수 있으니 뿌듯하다. 매일 새로운 우주를 만들 수 있어서 즐겁다. 

모뉴멘트 벨리 은하수 (c) 수지 어린이천문대 신용운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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