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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May 03. 2020

삶에는 위기보단 게으름이 더 많다.

 아버지는 보일러공이었다. 매일 밤마다 기름내와 흙내를 잔뜩 묻히고 집으로 돌아왔다. 90년대에 기술직은 딱히 좋은 직업은 아니었다. 흰 셔츠에 스트라이프 넥타이를 맨 사무직들의 인기가 높았다. 그래도 희망적이었던 것은 망치질에 살점을 내어주는 만큼 돈이 되었다. 체력을 깎는 만큼, 시간을 쓰는 만큼 적지만 정확한 현금이 지갑에 들어왔다.

 덕분에 나의 유년기는 꽤 괜찮았다. 가끔 용돈이 적다고 투정을 부렸어도 집은 조금씩 넓어졌다. 넷이 살던 단칸방이 투룸이 되었다가 이내 주택이 되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사람은 항상 대비해야 해. 어떤 어려움이 올지 몰라. 늘 준비해야 건강도 있고 돈도 버는 거야".

 신빙성이 없는 말이었다. 집이 커질 때마다 아버지의 허리는 무너졌다. 손은 더 거칠고 파였다. 일은 또 일을 만들고 휴식에 단단한 벽을 세웠다. 아버지는 계속 힘들다는 말을 하면서도 일을 했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어렸을 때 가난해서 그런가 보다' 싶었을 따름이다.


 아버지는 40년 전의 군대에서 5년 동안 복무했다. 전역 후에는 사우디에 외화을 벌러 가기도 했다. 돌아와서 비로소 보일러 기술을 배웠다. 삶은 늘 불안해서 처절하게 다음 삶을 준비해야 했다.

 그런 아버지가 나의 주말을 본다면 깊은 한숨을 쉴 것이다. 주말의 나는 해가 중천을 넘어설 때 일어나 대충 한 끼를 때운다. 넷플릭스에서 만만한 마블 영화를 한편 골라 본 후 커피를 마신다. 그리곤 책을 뒤적이다 덮고 글을 끄적이다 그만둔다. 삶에는 위기보단 게으름이 더 많고 나는 그것을 낭만이라고 부르며 안락하려 애쓴다. 그게 더 좋은 삶이라고 끊임없이 나에게 말한다. 이건 정말 좋은 삶일까?

영화 <레옹>속 마틸다와 레옹

 

 30대의 나에게 동화처럼 기억되는 영화는 <레옹>이다. 가족에게 구타를 당해 흐르는 피를 손수건으로 닦던 마틸다가 레옹에게 말한다. "사는 게 항상 이렇게 힘든가요? 아니면 어릴 때만 그래요?" 레옹이 말한다. "언제나 힘들지"

 레옹의 말에 나는 문득 불안했다. 나는 힘들지 않았다. 어려움에 늘 대비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과 달리 삶은 순탄했다. 평범하게 학교를 다녔고, 특별히 아프지도 않았다. 운이 좋아 적성도 금세 찾았다. 별이 좋았다. 아이도 좋았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 별을 볼 수 있는 천문학 강사가 나의 직업이 되었다.

 그러다 문득 겁이 났다.  만약 이 일을 못하게 된다면? 그렇다면 인생은 정말 힘들어지지 않을까. 다른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면 뭘 하면서 살 수 있을까. 아버지는 이런 걸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을까?


"나중에 우리가 천문대를 그만둬야 한다면, 뭘 할래?"


같은 일을 하는 친구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 기분을 내자며 강남의 멋진 바에서 수제 IPA를 먹던 중이었다. 신나게 맥주잔을 부딪치다가 절망적인 질문을 만난 친구는 당황했다. 눈동자가 흔들렸다. 불안한 입술을 흔들며 친구가 말했다. "진짜, 뭘 할 수 있지?"

 무슨 말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뭘 걱정해, 우리는 평생 이 일을 할 거야"와 같은 긍정을 원하지도 않았다. 나도 감당할 수 었는 질문에 친구를 끌어들였을 뿐이었다. 우리는 애처로운 답밖에 없는 질문을 두고 기가 죽은 채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평생 천문학을 좇아 왔다. 대학에서는 천문학을 배웠다. 아르바이트로도 천문대에서 했다. 어떤 신입사원 면접처럼 "이 직업이 아니라면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란 질문이 들어오면 정색하고 말하는 수밖에 없다. "저는... 천문학만 바라보고 살았는데요?" 무매하고 답답한 대답을 영혼처럼 쥐고 살아온 것이다.


  머리가 복잡했던 어느 토요일 밤, 일을 마치고 천문대에서 돌아와 습관처럼 컴퓨터 앞에 앉았다. 짙은 은하수가 모니터 바탕화면에 떴다. 인터넷 브라우저를 켜고 자연스레 우주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며 맥주를 입안으로 흘려 넣다 생각해본다. 나는 뭘 하고 오늘을 보냈나. 나의 하루는 별뿐이었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이 다른 직업을 준비해야 한다면 그것은 성공일 수 없다. 이런 인간은 평생 천문학을 가르치며 살아야 한다.

 성공이란 것은 내가 선택한 길 위에서 느끼는 관성과 게으름 그 어디 중간에 있다. 대비도 좋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에 반론도 없다. 다만, 무난한 어린 시절과 한 가장의 삶과 청년의 불안한 미래가 남긴 질문이 말했다. 지금의 삶을 지키는데 더 집중하는 게 좋겠다고. 지금도 충분히 좋은 삶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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