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승현 Apr 19. 2020

로켓은 슬픈 굉음을 뿜었다

 뮤어 우즈(Muir Woods) 국립공원의 삼나무는 근사했다.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건너서 만난 울창한 숲이었다. 시원하게 뻗어 올라간 나무를 보고 있자니 하마터면 나무를 탈 뻔했다. 영화 <혹성 탈출>에서 침팬지들이 행복하게 나무를 타던 장면이 눈 앞에 겹쳐졌다. 그렇다, 인간과 침팬지는 어쩌면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유전적으로도 1.6% 차이에 불과하다고 과학자들은 설명한다.


 1950년대 말, NASA는 선택해야 했다. 미국은 소련과의 우주 개발 경쟁에서 패배했다. 인공위성도, 개도 소련이 먼저 우주로 쏘았다. 미국은 애써 침착했다. 고철덩이나 개를 우주에 올린 것에 불과하다고 위로했다. 그러나 부족했다. 꼬깃꼬깃 구겨진 자존심을 펴려면 방법은 하나다. 먼저 인간을 우주에 쏘아야 했다.

 하지만 우주 비행이 사람에게 안전한지 장담할 수 없다. 연습이 필요했다. 인간과 비슷하면서 지능도 높은 동물을 먼저 보내야 했다. 그건 역시 침팬지 일 수밖에 없었다. NASA는 침팬지를 우주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1961년, 카메룬에서 생포된 침팬지 햄이 고된 훈련 끝에 로켓에 실렸다.


 미국과 소련은 햄 전에도 많은 동물들을 우주로 쏘았다. 그중엔 쥐와 개, 원숭이도 있었다. 장엄한 역사 속에서 동물들은 외롭게 우주에서 죽었다. 중력을 견디지 못해서, 뜨거워서, 산소가 없어서, 기술이 부족해서 죽었다. 1950년대에 우주로 쏘아 올려진 동물들이 지구로 살아 돌아온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들의 죽음은 과학 발전에 위대한 희생인 양 선전되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좁은 캡슐이 그들의 마지막 세계였다. 햄도 그 캡슐에 앉았다. 로켓은 슬픈 굉음을 뿜으며 우주로 향했다.

(차례대로)햄을 우주로 쏘아올린 로켓 Mercury-Redstone 2,  캡슐에 탑승한 침팬지 햄, 귀환 후 대서양에 착륙한 햄 (c )NASA


  다행히 햄은 살아 돌아왔다. 영장류 최초로 지구를 내려다보았다. 우주 비행은 단 16분이었다. 그 시간을 위해 햄은 목숨을 걸었고, 15개월의 훈련도 마쳤다. 그런 후에야 푸른 지구를 바라볼 수 있었다. 햄은 지겹도록 훈련한 대로 섬광을 보고 레버를 당겼다. 연구진은 우주에서도 인지 능력을 잃지 않은 햄을 보며 환호했다.

 캄캄한 우주에서 불빛이 나타나길 기다린 침팬지를 생각한다. 인간과의 유전적인 차이가 적다는 이유로 실험에 이용된 햄, 그렇다면 실험 과정에서 느꼈을 고통 역시 인간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햄은 그 뒤로도 17년을 더 살았다. 워싱턴 D.C의 동물원에서 아들, 딸도 낳았다. 자신을 둘러싼 인간들에게 "어이 인간들, 우주에 다녀온 원로에게 바나나 하나 더 주게" 하며 안락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햄이라는 침팬지가 당긴 지독한 우주 개발의 역사를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햄이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다면 사람을 우주로 보내는 일을 그만두었을까. 글쎄, 아마 제2, 제3의 햄이 살아올 때까지 계속해서 로켓을 쏘았을 것이다. 결국 인간도 우주에 닿았을 것이다. 인간의 욕심과 과학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이란 것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수많은 동물들이 인류의 호기심 때문에 죽었다. 우리는 빚을 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기서는 목성 안 보여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