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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Jun 21. 2020

김승현

 또 망할 순 없었다. 사업이 실패한 경험은 이미 충분했다. 어떤 사업가의 진부한 이야기처럼, 그도 삶의 막다른 길까지 갔었다. 혁신이라던 IT 사업이 완전히 망했었다. 돈을 잃었다. 사람도 잃었다. 명예는 원래 없었다. 칼보다 사람이 더 날카롭다는 것을 그는 주저앉으며 알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별을 보여주겠습니다" 


 우습게도 그는 삶이 막막해지고 나서야 자신의 전공을 떠올렸다. 천문학. 집을 나간 청소년처럼 '알아서 잘 살 수 있다' 해놓고는 결국 해가 지고 나서 쓸쓸히 돌아왔다. 

 자신이 졸업한 대학교를 찾았다. 뻔뻔하게 망원경을 빌려달라고, 아니 내놓으라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별을 보여주는 것을 업으로 삼을 셈이었다. 돈을 많이 벌겠다는 마음은 없었다. 망원경으로 우주를 휘젓는다고 부자가 될 리도 없었다. 먹고사는 정도에 그치면 되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별을 보여주는 것으로 인생은 이어졌다. 서울은 기회의 땅이었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별이 적었다. 별을 보겠다는 아이도 적었다. 이따금 몇 개의 별과 아이들만이 밤하늘 앞에 모였다.

 그래도 좋았다. 굶지 않아도 되었다. 일할 수 있으니 족했다. 언젠가 강원도에서 보았던 가득 찬 별도 좋았지만 그를 찾아온 아이들과 본 희미한 별들이 더 좋았다.

 살아보니 삶은 찬란한 순간보다 희미한 순간이 더 많았다. 밤하늘도 그랬다. 흐린 별빛 몇 개로도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다. 그는 점점 이 일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어두운 빛 몇 개로도 행복은 그려졌다. 




 그는 천문대의 대장이 되어있었다. 일을 시작한 지도 어느새 20년이 되었다. 모두는 그를 총대장이라고 불렀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도 많았다. 천문학을 공부한 많은 젊은 별들이 그와 같이 일했다. 

 강사 자리를 내어준지는 벌써 오래다. 벌써 쉰다섯이었다. 어쩌다 한 번 이면 모를까, 아이들을 계속 가르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들도 젊은 강사들을 훨씬 좋아했다. 씁쓸하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대신 그는 천문대를 더 잘 관리하는 것으로 역할을 내려놓았다.

  

 어느 봄, 예상치 못한 시련이 날아왔다. 중국에서 시작된 못된 감염병이었다. 일상은 억울할 만큼 허약했다. 눈에도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따위에도 부서졌다.

 모두 집에 강제로 갇혔다. 마스크를 갑옷처럼 둘렀지만 두려웠다. 학교도 가지 못했다. 도로가 휑했다. 당연히 별을 찾는 이들도 발길을 끊었다. 

 어두운 침묵으로 시간을 가늠하던 자리에서 한 젊은 직원이 물었다.


"총대장님"

빤히 부르는 말에 괜히 쑥스러운 듯 그가 화들짝 놀랐다.

"뭔데"

"만약에요, 아주 만약엔데요"

"끌지 말고 말해"

"혹시, 천문대가 망하면 어떻게 해요?

"뭐?"
"사람일은 모르는 거니까요, 저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너무 좋고, 할 줄 아는 것도 이 일 밖에 없어요. 그런데 만약 천문대가 사라지면, 저는 뭘 하고 살아야 해요?"


 코로나는 시련이었다. 그의 통장 숫자 앞에 마이너스가 붙기 시작했다. 다시 망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턱 아래를 맴돌았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밖으로 뛰쳐나왔다. 가족과 친구, 직원들이 차례로 아른거렸다. 하늘을 보았다. 밤하늘에 몇 개의 별이 떠있었다.

 그는 포기할 생각이 없다. 어떻게든 천문대를 살릴 것이다. 무슨 방법으로든 버텨 아이들을 기다릴 것이다. 하지만 의지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고 되뇌었다.

 그는 사업이 망하고 올려다본 그날이 떠올랐다. 그때는 희미한 별빛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었다. 문득 지금이 자신이 희미한 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총대장은 젊은이에게 답했다. 

 "꼭 천문학이 아니어도 돼. 아이들이 좋으면 어린이집에서 일하면 되는 거야. 돌아오는 길에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별 몇 개를 만족스럽게 보면, 그리고 굶지 않으면 삶은 만족스러운 거야."



 삶은 종종 꾸준히 쓰리고 아리지만 충분히 좋다는 생각이 든다. 좌절하지 않는다. 오래도록 잊고 살았다. 어두운 별 빛 몇 개로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혹시 다시 망한다고 해도, 천문대가 문을 닫게 된다고 해도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니다.

  고수리 작가는 말했다. 우리는 달빛 아래서도 걸을 수 있다고. 차갑게 빛나는 작은 행복으로도 우리는 산다. 달빛 아래 빛나는 흐린 별빛 몇 개로도, 우리는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 것이다.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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