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승현 Apr 22. 2022

고장 난 미라클 모닝

"와, 아침 7시에 배고파서 편의점으로 밥 사러 간다"

"나도 깼어, 잠이 안 온다"


 연수차 별을 보러 다른 나라에 다녀오면 동료들과 나는 시차에 허덕인다. 특히 미국을 다녀오면 공교로운 시차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게 된다. 아침 7시란 누군가에겐 지각 확정과 더불어 알람이 울리지 않은 핸드폰을 박살내고 싶은 시간이지만, 밤을 살아가는 천문대 강사들에게 꼭두새벽 같은 시간이다. 

 그러다 문득 '일찍 일어난 김에 아침형 인간이나 되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른 아침 일어나 하루를 길게 사는 것이 성공이 기초이며 미라클 모닝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원래는 아침 11시에 일어나는 아침의 뒤통수만 간신히 마주하는 삶이었지만, 지금은 아침 7시만 되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울분과 짜증의 합주곡인 알람을 맞출 필요도 없다. 미라클 모닝을 만들어야 한다면 지금이 절호의 찬스다. 


 다음 달에도 나는 시차가 때리는 따귀를 맞으며 아침 7시에 번쩍 눈을 떴다. 미라클 모닝이 시작된 것이다. 차가운 공기와 어스름한 햇살이 뒤섞인 아침의 향이 내 코밑에서도 났다. 나는 부의 향을 맡으며 생각했다. 아, 이것이 바로 성공의 냄새구나.

 일어나는 데는 가볍게 성공했지만 무엇을 할지는 생각해 둔 게 없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일찍 일어나는 것 자체가 목적이어서 다음 스텝이 없었다. 이 귀중한 시간을 어디다가 쓸까 고민했다. 듣자 하니 아침 7시 헬스장은 출근 전에 운동을 하는 사람들로 복잡하다고 했다. 이 귀한 시간을 복작거리는 곳에서 소비하고 싶지 않았다. 책을 읽기엔 조금 낯선 시간인 것 같고, 청소기를 돌리자니 아랫집이 자고 있을까 봐 겁이 났다. 생활하던 시간이 아니다 보니 살짝 몽롱해서 글을 쓰고 싶지도 않았다.

 이런 정신으로 무슨 미라클 모닝인가. 결국 유튜브나 보며 히죽대다가 평소에 일어나던 12시가 되었고, 대충 아침 같은 점심을 먹고 출근했다. 일찍 일어난 탓에 저녁부터 헤롱 댔다. 전날 술을 한 바가지 먹은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기적의 아침 대신 고장 난 저녁만 남긴 하루였다. 그러고는 뭐, 대충 2-3일 지나니 원래의 패턴으로 돌아와 다시 올빼미 족으로 살고 있다. 슬프지만 나에게 미라클 모닝은 달나라보다 더 다른 세상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22년 4월 18일, 정부는 일상 회복을 선언하며 거리두기를 전면 해제했다. 다중 이용 시설의 운영 시간제한이 폐지된 것이다. 그러자 헬스장에서 문자가 한 통 도착했다.


"그동안 많이 기다리셨죠? 24시간 영업을 시작합니다!"


 감격스러운 문자였다. 내가 다니는 헬스장은 24시간 운영되는 헬스장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19 만든 영업시간 제한 때문에  번도 24시간 개방된 적이 없었다. 한데 2년 만에 드디어 24시간 헬스장의 혜택을   있게 된 것이다.

 야밤에 헬스장은 생각만 해도 좋다. 주차장도 여유롭고 헬스장 안에도 사람이 별로 없다. 이 말은 즉슨 이두박근이 내 얼굴만 한 근육맨들과 치열한 눈치싸움을 하며 기구 쟁탈전을 벌여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물을 마시러 갔다 오는 사이에 '누가 내 기구를 쓰고 있으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도 할 필요도 없다. 희미하지만 가득 차 있는 땀냄새와 습한 공기도 없다. 심야 영화를 볼 때처럼 헬스장 전체를 전세내고 쓸 수 있다는 것은 무척 행복한 일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일을 마친 뒤 곧장 헬스장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밤 12시가 조금 넘었다. 텅텅 비어있는 주차장에 차를 던져놓듯  댔다. 이렇게 주차가 널널하다니, 감격스러웠다. 평소완 다르게 신이 난 걸음으로 헬스장 문을 열었다. 

 헌데 이게 무슨 일이람, 헬스장에는 평소 내가 낮에 오는 시간보다 2배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눈을 다시 비비고 다시 봤지만 여전히 사람이 가득했다. 여기저기 "으아, 윽, 후, 씁, 하" 사자의 호흡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물론 운동 기구도 사람들로 가득 찼다. 저 기구를 쓰려면 놀이 기구를 탈 때 보다 더 오래 기다려야 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놀란 것은 무척이나 많은 사람들이 밤에 본인을 가꾼다는 것이었다. 운동의 본질은 자기 계발이다. 몸을 키우고 싶은 사람, 다친 허리를 재활하고 싶은 사람, 거북목을 교정하고 싶은 사람, 체력을 기르고 싶은 사람, 원하는 몸매를 가지고 싶은 사람, 넘치는 에너지를 소진하고 싶은 사람. 목표는 다르지만 모두 저마다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성실한 땀을 흘린다. 나는 그 모습을 약간은 혼미한 상태로 쳐다보았다. 그리곤 먼발치에서 깨달았다. '아, 이것이 미라클 미드나잇이구나.'


 누구에게나 하루는 24시간이다. 미라클 모닝의 본질은 한정된 하루를 길고 소중하게 쓰는 것일 텐데, 나는 그저 아침에 일어나면 모든 것이 성공할 것처럼 오해했다.

  때때로 성실이란 어려운 순간을 버텨내야 다가오는 것처럼 여겨진다. 아침 같은 순간 말이다. 하지만 역시 시간대보다는 시간을 쓰는 능력이 더 중요한 것 같다. 나 같은 인간은 아침 보단 밤에 더 정신이 맑다. 그것들이 아침을 버텨내지 못한 데서 오는 자신만의 합리화가 아니라는 것도 사람들을 통해 배운다. 

 나는 달밤에 헬스를 하는 사람들을 보며 미라클 모닝이 적성에 맞지 않아도 괜찮을 수 있다는 사실을 겨우 인정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을 수도 있지만, 늦게까지 벌레를 잡는 새도 꽤 배부르게 살고 있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건달과 연예인 그 사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