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가 드가
프랑스 파리가 예술과 낭만으로 가득했던 황금기, 벨 에포크 시대
19세기 파리에서 무용수는 대부분 노동자 계급 출신으로 일곱 살 정도의 어린 소녀였다. 극성스러운 엄마 때문에 억지로 발레를 시작하는 소녀도 많았을 것이다. 무용수는 성공하면, 학생 신분에서 시작해 발레단의 구성원이 되고 실력이 쌓이면 솔로로 활동하다 나중에는 발레단의 주연 무용수가 되는 명예도 얻을 수 있었다.
힘들고 긴 발레 수업이 끝났는지 어린 소녀들은 녹초가 된 듯하다. 저마다 고단한 몸을 뒤틀며 스트레칭을 하거나 옷매무새를 다듬고 있다. 앉아서 쉬고 있는 소녀들도 보인다. 그림의 중앙에 열심히 발레 연습을 하는 소녀와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이 든 남자 선생은 무용수에서 안무가로 변신한 쥘 페드로다. 드가의 다른 그림에도 여러 번 등장한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드가의 발레 그림에는 반전의 스토리가 숨어있다. 그림의 배경이 되는 19세기 파리의 시대상을 모르면 단순히 어린 소녀들은 발레 수업을 받고 있고, 그림의 오른쪽 위로 보이는 엄마들은 발레 수업 후 딸을 데려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걸로 생각할 것이다.
무대 위에서 화려한 공연을 선보였던 발레리나의 삶은 사실 매우 고단했다. 당시 발레리나는 뼈가 성장해 굳어버리기 전의 어린 나이에 혹독한 훈련을 견뎌야 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6일은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수업을 받고 그 이후부터는 공연 연습을 해야 했다. 이런 훈련으로 몸이 망가지고 심지어 불구가 되는 소녀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소녀들은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 일 악물고 버티었다. 이때 발레리나는 막대한 돈을 벌 수 있었고, 가난한 형편의 소녀들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그 길을 선택했다.
화려한 무대의 주인공이지만 현실은 우울한 소녀들!
도시의 고독한 인물을 주로 그렸던 드가는 발레리나의 삶에 관심을 가졌고 천 여점이 넘는 발레리나 그림을 남겼다.
발레리나를 지켜보고 있는 양복을 잘 차려입은 신사들.
그림에 숨겨진 이야기는 무엇일까?
당시 파리의 부유한 중년 남성들은 발레공연장을 자주 찾았다. 발레를 좋아해서라기보다는 어린 발레리나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발레 수업>에서 모자를 쓴 여인인 엄마들이 기다리는 이유는 놀랍게도, 딸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딸의 몸에 더 높은 값을부르는 후원자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림 속 발레리나의 목에 묵여진 검은색 장식은 그녀들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밤낮없이 노력하여 작품을 만들지만, 그들의 노력이 귀족을 위한 유희로 전락하는 발레리나의 슬픈 운명을 작품을 통해 표현하려 한 것이 아니었을까?
또한 드가는 구도와 색채를 통해 독특한 공간감을 구현했다. 화면은 정면 구도에서 벗어나 비스듬하게 구성되어 있어 관객이 발레 연습실 한쪽 구석에서 장면을 엿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런 구도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으며, 일상 속의 특별한 순간을 포착하려는 그의 의도를 잘 드러낸다.
드가는 당시 주변 사람들로부터 ‘여성 혐오자’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는 평생 여성에 대해 냉소적이었으며 그의 작품 속 여성들을 품위 있거나 아름답게 묘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드가는 여성을 상품화하지 않고 현실 속의 한 인간으로 대했으며, 노동자 계급 출신의 어린 발레리나가 가난 때문에 신사들에게 성을 팔아야 했던 당시의 참담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서 드가의 사실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알 수 있다. 고전주의자들이 아름다운 가상을 그렸다면 사실주의자들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미화하지 않고 표현했다. 드가는 인상파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했고 자신을 사실주의자라고 주장했다.
그림 출처 : Artv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