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니카

파블로 피카소

by 별쌤
게르니카, 1937년(이미지 출처 : 위키디피아)


현실 속에 존재했던 <게르니카>


1937년, 피카소의 조국 스페인은 내전에 휘말린다. 힘없는 정부가 다스렸던 스페인 공화국은 프랑코 장군이 이끄는 우익 군사 세력의 도전을 받았다. 4월 26일 공화국 군대가 스페인 남부 바스크 지방의 작은 마을 게르니카에 모이자 프랑코 장군은 공화국 군대를 몰살하기 위해 독일 나치에 도움을 요청한다. 제2차 세계대전을 준비하던 독일은 게르니카 근방에 부대를 주둔시킬 목적으로 이를 승낙한다. 나치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인 게르니카를 폭격하고 피란 가는 주민을 기관총으로 학살한다.


스페인의 작고 평화로운 마을 게르니카에 4시간 동안 떨어진 폭탄은 무려 50톤,

게르니카 대학살로 인구 7천여 명 중 1,600여 명이 사망,


격의 이유는 나치의 무기 테스트


1937년 4월 27일 신문을 통해 게르니카 대학살에 관한 기사를 접한 피카소는 큰 충격을 받고, 27일 뒤 열릴 파리 만국박람회의 스페인 전시관 벽화를 스케치하기 시작한다. 이때 그린 것이 <게르니카>이다.


전쟁의 끔찍한 참상을 검은색, 흰색, 회색만을 사용하여 절제된 그레이 톤으로 그려 전쟁의 참혹함과 비극을 더욱 강조했다.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사람들


죽은 아이를 안고 절규하는 어머니


온몸을 관통한 창에 고통스러워하는 말


폭격당한 집에서 뛰쳐나오는 여자들


건물의 화염 속에서 불타고 있는 사람


공포에 질린 잿빛 도시


작품의 가운데에서 아래를 비추는 빛은 전쟁의 비극적인 현장을 고발하는 일종의 상징이다.


게르니카는 미국 뉴욕의 현대미술관 MoMA에서 소장 보관하다가 1975년 프랑코가 죽은 뒤 1982년에 이르러서야 스페인의 품으로 돌아간다.


청색시대와 장밋빛시대 이후 큐비즘이라는 미술 사조를 선도했던 피카소는 그릇된 역사를 부정하거나 모른 척하지 않았다.


1950년 한국전쟁을 알리는 작품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작품도 1951년에 발표한다.


이후 침략전쟁을 냉소하는 수많은 <게르니카>가 탄생한다.


2003년 이라크 전이 발발하자 <게르니카>는 다시 살아났다. 바로 <이라크니아>라 불리는 작품이다. 제목처럼 이라크전의 참상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게르니카>에 관한 피카소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나치 장교 : 게르니카 당신이 그렸나?

피카소 : 아니, 니네들이 그렸지!



회화는 아파트나 치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회화는 적과 싸우며 공격과 수비를 행하는 하나의 전투 무기입니다.

-피카소-

keyword
이전 08화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