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pixa bay
고흥에 와서 처음 일하게 된 곳은 동네에서 가까운 면사무소이다.
복지계 아르바이트 몇 개월을 거쳐 산업계 사무보조로 공공근로를 하게 되었다.
'공공근로'는 나라에서 만든 일자리 사업으로 많은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장점도 있지만, 5개월 단위 계약기간으로 실업급여 수급이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는 일자리이다. 최대 2년까지 할 수 있으며, 나는 5개월씩 2년 꽉 채워 근무를 했다.
내가 공공근로로 근무했던 산업계를 소개해 보면... 주로 농어촌 관련 민원 및 사업 신청 관련 업무가 많고, 농지원부, 농업수당, 공익수당, 여성농업인사업, 축사 관련, 귀농귀어촌 업무도 많고, 가을에는 벼 수매도 하고, 바다지킴이 산불지킴이, 시장관리 등의 많은 업무가 있었다.
공공기관에서 이렇게 많은 업무들을 하고 있는지 공공근로를 하며 처음 알게 되었다. 등초본 떼고, 이주나 혼인신고정도 하던 것이 다였던 나에게는 놀랄 일이었다. 대부분 야근을 하고 주말근무도 자주 하는 것을 보았다. 기존에 공무원들의 일처리에 불만 섞인 말들은 웬만하면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어디에나 예외인 사람들이 있겠지만)
내가 한 일은 직불금담당 주무관의 사무보조였다.
처음엔 직불금이 뭐고 필지는 또 뭐고 이모작이니 조사료니... 뭐가 뭔지 하나도 몰라 물어보기도 물어보지만, 요리조리 눈치 보며 요령껏 익혀갔다. 어렵기도 했지만 농업이라는 신세계를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이 꾀 재미도 있었다.
'직불금'이란 농사를 짓는 농민들을 위한 제도로 일 년에 한 번 경작 면적에 따라 나라에서 일정 금액을 지원해 주는 제도이다. 아무래도 농민에게 가장 큰 액수가 지원되는 것이라 일 년 중 많은 관심이 집중되는 제도인 것 같았다. (가끔 농사를 짓지 않으면서 부정 수급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받았던 직불금보다 많은 금액을 다시 토해내야 한다.)
신청 시에는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있기 때문에 이것들을 확인하고 신청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어르신들이 직접 하시기엔 생각보다 어렵기도 하고,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글을 모르시는 분도 있고, 노안으로 글씨가 안 보이는 분들도 계셔서 작성 시 하나하나 봐 드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마을 이장님을 통해 신청을 받지만,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본인에게 직접 확인해야 좋다. 이 신청부터가 나의 업무이다.
신청을 받고 나면 내용을 확인하며 전산으로 옮겨 입력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돈이 관련된 일이다 보니 필지 주소나 면적, 계약일 등 하나라도 틀릴까 봐 입력하면서 많이 신경이 쓰였었다.
잘못 계산되어 돈이 모자라게 나오면 바로 민원이 제기되기 때문에...
공공기관에서 가장 무서운 일은 바로 악성 민원이다. 그래서 나 때문에 민원이 하나라도 들어올까 봐 정말 조마조마했었다.
출처 pixa bay
내가 일한 면사무소의 농가수는 900 가구가 넘었던 걸로 기억한다. 고흥군에서 그 당시에 읍, 면단위 세 번째로 큰 농가수라고 한 것 같다. (몇 년 전 기억이라 아닐 수도 있다..)
봄에 신청을 받고, 여름 가을에는 전산입력과 검토, 농가 확인을 거친 후 11~12월 즈음 통장으로 직불금이 입금된다. 그리고 이의 신청기간을 갖는다. 고로 일 년 내내 직불금 업무가 있다는 뜻이다. 보조근무자가 없다면 농가가 많은 직불제 담당자는 업무가 많이 고될 것 같았다.
근무를 하며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점은 임대 계약서 확인업무였다.
임대농지의 계약 기간이 끝나거나, 계약서 자체가 처음부터 첨부되지 않은 필지(땅)는 계약서를 '농산물 품질관리원'(품관원)에 제출해야 한다. 그러면 품관원에서 임차인과 농사 면적, 농산물 등 계약서 내용이 확실하게 맞게 작성되었는지 확인 후 전산에 등록이 되는데... 바로 이 계약서 받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개인 간 임차기간이 끝난 줄도 모르고 계속 농사는 짓고 있는 농가, 주인이 돌아가시고 자녀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땅, 문중 땅, 계약서와는 다르게 다른 사람이 농사를 짓고 있는가 하면, '내가 농사를 짓고 있는데 계약서가 뭐 필요하냐'라고 와서 확인해 보면 된다고 우기는 어르신도 있다.
예전부터 농사를 지어온 어르신들은 계약서라는 것 자체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을 안 하신다.
그냥 사용하지 않는 땅에 약간의 수를 주고 농사를 지면 되지 계약서까지 작성한다는 것이 번거롭기도 하지만, 왠지 정 없고 딱딱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도 직불금은 나라에서 지원하는 사업이고, 특히나 현금이 오가는 사업이니만큼 공정해야 하고 확실해야 하기에 서류가 중요하다. ('그냥 내가 증인인께 해주쇼~'라던지 정이나 마음에 선처를 호소하는 분들이 많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다. 내가 무슨 능력이 있겠는가... 나는 계약직 공공근로자에 불과하고, 그냥 넘긴다는 것은 제대로 계약서를 제출하시는 분들에겐 매우 억울한 일이고, 부끄럽게 여길 일인 것이다.)
근무를 하며 아주 화가 났던 일도 있다. 계약서를 가져와야 한다고 하니...
'시골에서 누~가 계약서를 작성하고 농사를 짓냐! 노~는땅이 지천인데 그냥 지으면 되지!'라며 나에게
"호구"라며 비꼬는 말과 함께 삿대질한 사람이 있었다.
당시 나는 내 이름으로 구입한 땅에 마늘농사를 지어보려고 퇴비차를 불렀는데, 그만 그 퇴비차바퀴가 우리 밭에 빠져버린 것이다. 밭을 깊이 갈아 놓아서 흙이 푹신푹신했는지... 그래도 바퀴가 빠질 줄은 생각도 못했었다. 그런데 그 퇴비 사장님을 면사무소에서 만난 것이다. 바퀴가 빠졌을 당시 나는 죄송하다 여러 번 사과했고, 서로 대화로 잘 풀었다고 생각했는데... 빠졌던 그 밭주인이 직불금 신청하려면 임대차 계약서를 내놓으라 하니 다시 화가 올라왔는지 나에게 열을 냈다.
'호구'라는 처음 들어보는 말에 기분이 며칠 동안 아니... 아직까지도 안 좋지만, 당시에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참았다.
몇 개월 뒤 들리는 소식으로는 이분이 임대차 계약 없이 남에 밭을 사용하다 그 주인이 신고해 벌금을 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 봐요... 제가 계약서 있어야 한다고 했잖아요? 법에는 '농지법'이란 것도 있답니다. 시골 농사라고 대충 해도 된다 생각하니까, 그래서 생기는 문제들이 많으니까 만들어진 법 이겠지요?'
트랙터로 간 우리 밭
또 하나 힘들었던 것은 하루종일 컴퓨터 전산 입력을 하다 보니 목과 어깨근육에 돌이킬 수 없는 통증이 생겼다는 것이다.
지금은 컴퓨터업무가 많은 일을 하고 있지 않는데도 매일매일 풀리지 않는 목과 어깨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물리치료도 침도 소용이 없다. 그냥 매일 스트레칭과 찜질을 할 뿐이다.
( 컴퓨터로 하루종일 근무하는 직장인들을 보면.... 그 무거운 어깨를 어떻게 견디는지 정말 존경스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출처 pixa bay
직불금 업무 외에도 민원인 안내와 다른 업무 지원도 조금씩 하고, 난생처음 새벽일찍 일어나 수매장에도 가보며 그렇게... 낯선 농어촌 용어와 제도들과 분위기를 알아가고 배우며 2년 조금 넘는 시간의 면사무소 근무를 마쳤다.
바쁜 덕분에 시간이 폭풍처럼 휙-하고 지나갔다.
업무 자체는 신경도 많이 쓰이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근무하는 내내 즐거웠다.
그 이유는 힘든 일이 있던 만큼, 그만큼 더 좋은 분들을 만나서일 것이다. 역시 일보다 사람이 중요하다고.... 함께 일한 팀장님들과 직원들은 고흥에 대한 첫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만들어 주셨다.
비록 계약직 근로자이지만 행사 때마다, 명절 때마다, 맛있는 것이 있을 때마다 너무나 잘 챙겨주시고, 아이들에게 일이 있을 때도 먼저 걱정해 주시고 말씀해 주시며 신경을 써 주셨다. 나도 결혼 전에는 5년 정도 직장을 다녔었지만, 이렇게 좋은 분들은 만나보지 못했었던 것 같다.
그저 감사할 뿐이다. (아직도 가끔 팀장님께서 전화를 주신다. 혹시 일자리 못 구했을까 봐.... ㅎㅎ '걱정 마세요~ 저 꾸준히 일하고 있어요. 어디에서든^^ )
이 모자란 글이 그분들에게 닿을 가능성은 없겠지만, 그래도 이 늦은 시간 마음으로 감사 인사를 전해본다.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저에게 면사무소에서 근무했던 시간은 힘들었던 날들엔 보람을 느끼고, 즐겁게 어울리고, 새로운 것을 알아가고, 새로 운 친구를 만들고, 새로운 설렘 속에 지냈던 그런 소중한 날들이었습니다.
고흥 하늘 아래에서 우리 또 만나요~^^'
출처 pixa 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