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들이 꽃보다 아름다워
우리말에는 유독 개(dog)와 관련된 관용어가 많다. 한국인이 가장 자주 쓰는 욕설, 비속어의 집합은 개를 포함한 표현을 제외하면 굉장히 홀쭉해질 것이다. 증오의 대상에게 침을 튀기며 '개xx'라고 소리 지르는 사람을 볼 때면 '과연 저 인간이 개보다 나은 동물이라는 증거는 무엇인가?'라고 묻게 된다. 아주 어지럽고 정리가 안 된 상황을 접하면 누구나 쉽게 '개x'이라고 말한다. 아마 수많은 개들이 제각기 짖어대는 소음으로 가득한 현장만큼 혼란스럽다는 뜻 이리라. 비록 주로 거친 말이긴 하지만 우리말에 개 관련 표현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개가 오랜 시간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이었음을 알게 해 준다. 한국에서 개를 반려동물로 여기고 개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 1천만 명을 넘어선 지도 제법 오래되었다. 예전에는 주로 마당에 살면서 도둑으로부터 집을 지킨 개들이 이제는 사람만으로 데울 수 없는 외로움의 자리가 얼어붙지 않게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개가 준 위로와 헌신은 결국 개는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쉽게 잊히곤 한다. 개만도 못한 사람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개들은 개만도 못한 사람들보다 더 많이 버림받는다.
애니메이션 영화 <언더독>의 주인공은 사람에게 버림받은 개들이다. 주인이 자신을 버렸을 리 없다며 현실을 부정하던 뭉치(디오)는 짱아(박철민)가 이끄는 유기견 무리에 합류해 살아남는 법을 배워간다. 개 사냥꾼(이준혁)이 시시각각 무리를 위협하고, 재개발 지역 안에 어렵게 마련한 보금자리가 파괴되자 짱아 무리는 평화가 일상인 이상적 거처를 찾아 함께 떠난다. 뭉치의 마음을 사로잡은 밤이(박소담)도 여정에 동참한다. 이후 이야기는 누구나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흐른다.
<언더독>은 동물권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다소 진지한 주제의 '전체 관람가' 애니메이션이다. <언더독>에서 '전체 관람가'는 '어린아이가 타깃인 애니메이션'을 암시하기보다는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전 연령대가 음미해볼 만한 영화'를 뜻한다. 다양한 견종을 토대로 정성 들여 창조한 귀여운 캐릭터들과 아름답게 그려낸 한국의 청정한 산수는 애니메이션만의 매력을 배가한다. 박철민을 비롯해 디오와 박소담 등 준수한 연기력을 보유한 배우들은 낯설었을 법한 목소리 연기도 무리 없이 해냈다. 특히 짱아의 목소리를 연기한 박철민의 중얼거림은 웃음의 방아쇠다.
애니메이션은 실사영화 이상으로 만들기 어렵고, 제작에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고생 끝에 훌륭한 애니메이션이 탄생한다고 해도 들인 노력에 비해 관객의 사랑을 받을 확률은 크지 않다. 자연스레 애니메이션에 대한 투자는 박하다. 한국영화 시장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오성윤, 이춘백 감독의 전작 <마당을 나온 암탉> 개봉일이 2011년 7월 28일이었고, <언더독>의 개봉 예정일이 2019년 1월 16일이니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의 혹한기는 제법 길었다고 할 수 있다. 개들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언더독>이 때로는 잘 만든 애니메이션이 실사영화보다 아름답다는 사실도 알게 해 줄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