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히어로가 주위를 돌아볼 때
슈퍼히어로들은 이름처럼 현실의 물리 법칙 '위에(super)' 있다.
초자연적 능력이든, 고도의 과학 기술을 바탕으로 개발된 능력이든 그들은 스크린 밖의 물리 법칙을 무시한다. 워낙 막강한 적들을 상대하다 보니 슈퍼히어로들은 뜻하지 않게 각종 실정법도 위반하기 일쑤다. 물리 법칙을 어기는 것은 슈퍼히어로를 슈퍼히어로답게 해주는 권능을 보장한다. 긍정적 일탈이다. 하지만 실정법 위반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무고한 생명까지 희생되었다면 슈퍼히어로의 일탈은 더 이상 용인되기 힘들다.
슈퍼히어로가 우리를 구해주지 않고 해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고민으로부터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이하 '시빌 워')>는 출발한다.
<시빌 워>는 당장 눈 앞의 적들을 상대하느라 주위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던
슈퍼히어로들의 반성문이다.
슈퍼히어로가 자신이 처한 현실 속 주위를 돌아보니, 컴퓨터 그래픽으로 도배된 블록버스터가 새로운 옷을 입는다. 시청각을 홀리는 액션 시퀀스들 사이에서 인물들의 갈등이 도드라지면서 드라마가 강해졌다. 슈퍼히어로 규제에 찬성하는 토니 스타크/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과 달리 규제에 반대하는 스티브 로저스/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가 대립한다.
토니(아이언맨)는 어벤져스를 향한 사람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스티브(캡틴 아메리카)는 규제가 어벤져스의 손발을 묶어 어벤져스의 활동을 제약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일부가 손해를 입거나 희생당하더라도 가능한 많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는 것이다.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입장은 '무엇이 공공선(公共善)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한쪽 손을 들어주기 어렵게 한다.
쉬운 정답을 피하고 관객을 고민에 빠지게 하는 갈등 구조야말로
<시빌 워>의 가장 큰 미덕일지도 모르겠다.
외골수 같은 스티브(캡틴 아메리카)가 답답할 수도 있고, 여전히 제멋대로 행동하는 듯한 토니(아이언맨)가 아니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시빌 워>의 액션 시퀀스만큼은 속 시원하다. 비브라늄 방패를 활용한 캡틴의 육탄전은 여전히 흥미롭다. 리부트 예정인 새로운 스파이더맨(톰 홀랜드)의 재잘거림과 놀라운 능력치, 앤트맨(폴 러드)의 반전 활약, 새로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에 등장한 블랙팬서(채드윅 보스만)의 유연한 몸놀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영화 <시빌 워>는 액션 시퀀스에서는 슈퍼히어로 액션 블록버스터의 본령을 무난히 사수한다. 스토리라인에서는 뜻밖에 진지한 고민거리를 던지며 이야기의 흡인력을 높인다. 현란한 영상 기술을 앞세우다 실패한 많은 영화들에게 <시빌 워>는 말한다.
"문제는 스토리야, 바보야"
*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