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청춘 우대'는 없다
언젠가부터 '청춘'은 예찬의 대상에서 소외됐다. 요즘 한국 사회의 청춘에 따라붙는 가장 흔한 말 중 하나는 '사상 최악의 청년 실업률'이다. 고온다습한 한증막 공기처럼 숨이 턱턱 막히는 스펙 경쟁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일자리는 너무 적다. 지금 청춘은 열정, 낭만, 사랑, 예술보다 낙인처럼 기록되는 빚의 숫자를 먼저 실감한다.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꿈이나 장래희망을 고민할 여유가 없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막연한 긍정을 노래하는 것은 지독한 사치다. 궁지에 몰린 수많은 청춘을 위한 탈출구는 과연 무엇일까? 있기나 할까?
영화 <변산>의 주인공 '학수(박정민)'는 무명 래퍼다. '심뻑'이라는 별명을 사용하는 그는 무명 래퍼의 등용문인 <쇼미더머니> 프로그램에 6년 연속 참가했지만 별 성과가 없다. 이제 그만둘 법도 한데 학수는 래퍼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놓지 않는다. 발레파킹과 편의점 알바로 생계를 유지하며 비좁은 고시원 방에서 비트를 갈고닦는다. 그는 어쩌면 래퍼로 세상을 호령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있다기보다 랩밖에 할 것이 없어서 매달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만큼 학수가 내뱉는 가사들은 근사한 시구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을 만큼 애절하고 유려한 맛이 있다. 물론 잘 들어맞는 라임(rhyme)은 기본이다. 이처럼 랩과 알바로 꽉 찬 학수의 일상에 파문을 던지는 것은 그의 고향이다. 아름다운 노을을 바라볼 수 있는 변산을 품었지만, 학수에겐 징글징글한 인연과 기억을 안겨준 그 곳.
아버지(장항선)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수년만에 고향으로 돌아간 학수는 아버지, 학수를 짝사랑하는 선미(김고은), 그리고 고향 친구들과 재회해 좌충우돌한다. 영화 <변산>의 내러티브도 좌충우돌한다.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들을 바탕으로 극이 전개되는 탓에 탄탄한 짜임새가 없다. 엔딩은 촌스럽다. 가만 생각해보니 청춘영화는 원래 이야기든, 캐릭터든 엉뚱함이 중요한 덕목이긴 하다. 주조연 가리지 않고 캐릭터를 잘 소화한 배우들이 해결사다.
이준익 감독은 영화 <동주>와 <박열> 등 최근 작품에서 시대의 무거운 공기를 통감했던 청춘을 조명했다. 일제시대라는 역사의 암흑기가 배경인 <동주>와 <박열>의 등장인물들과 비교한다면 '지금 여기'의 청춘은 더 살만할까? 이준익 감독은 어쩌면 이 질문에 답해보고자 영화 <변산>을 만든 것이 아닐까. 질문의 답은 '예, 아니오'로 딱 떨어지지 않는 것 같다. 영화 <변산>의 결말은 언뜻 판타지 같지만, 영화 전체를 복기해보면 인생에 '청춘 우대'는 없다는 사실도 엄연하다. 퍽퍽한 찬밥 같은 삶이지만 변산 앞바다의 노을처럼 아름다운 풍경과 순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잠시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으니 그래도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