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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혁 Jun 12. 2016

[절찬 상영중] 싱 스트리트

음악, 가장 뛰어난 항우울제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 


과거 유학자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을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으로 구분했다. 기뻐하고, 성내고, 슬퍼하고, 즐거워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욕심내는 것. 이른바 칠정(七情)이다. 유학자들은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아주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해서는 안 된다. 중용과 절도를 지키며 감정을 표현할 줄 알아야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있다. 짐승이 아닌 진짜 인간이 되기 위하여 고단한 자기 수양이 필요하다. 감정의 종류가 아니라 감정의 '표현 정도'에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 있다고 보는 관점이다. 

고리타분해 보이는 이 관점보다 더 경직된 사고방식을 우리는 암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쁨, 즐거움, 사랑이 정상의 범주에 포함되는 반면 성냄, 슬퍼함, 미워함, 욕심은 비정상의 틀에 묶인다. 비정상적이라 생각하는 감정을 제어하기 위해 늘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런데 그 결과는 가짜 웃음이거나 더 깊은 우울인 경우가 많다.  
영화 <싱 스트리트>의 미덕은 음악을 통해
다양한 색깔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면서
진짜 웃음을 향해 전진한다는 것이다. 

주인공 코너(퍼디아 월시-필로)는 우울증에 빠질 위기에 처한 소년이다. 아일랜드의 파탄 난 경제는 코너 가족의 거처까지 뒤흔든다. 어려워진 가계 때문에 형은 대학을 중퇴했다. 코너도 학비가 더 싼 학교로 전학을 가야만 했다. 연일 싸우는 부모님은 도대체 왜 같이 사는지 모르겠다. 이혼하는 편이 나은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는 우울해지지 않는 사람이 비정상이다. 

설상가상으로 코너가 전학 간 학교는 문제아 투성이다. 가톨릭 학교의 권위적인 수사(修士)는 코너를 괴롭힌다. 집도, 학교도 코너가 편안히 머무를 공간이 아니다. 심해처럼 깊은 우울이 코너를 덮치기 직전, 코너는 천사 같은 라피나(루시 보인턴)를 거리에서 만난다. 자신을 모델이라고 소개하는 라피나의 연락처를 받아내기 위해 코너는 자신이 밴드를 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 코너는 라피나에게 자기 밴드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렇게 코너의 음악은 사랑을 얻기 위한 귀여운 거짓말에서 출발한다.
든든한 밴드 멤버들이 갖춰지고, 코너에게 라피나와 음악은 안식처가 된다.
코너에게는 유학자들이 설파한 자기 수양이 아니라
음악 창작이 깊은 우울에서 탈출하는 방법이다. 


사랑의 설렘과 기쁨은 흥겨운 멜로디와 비트로 표현된다. 슬픔은 처연한 발라드 곡으로 승화된다. 자칫 극단으로 흐를 수 있었던 감정의 소용돌이는 음악이라는 필터를 통과한 후 아름다운 중간 지대에 머문다. 타인 혹은 자신을 해칠 지도 모를 극단적인 감정 표현을 음악이 다스려주는 것이다. 

이제 막 음악의 세계에 발을 들인 코너는 아직 누구도 발자국을 남기지 않은 하얀 설원 같은 존재다. 그는 듀란듀란(Duran Duran), 아-하(A-Ha) 등 당대 뮤지션들의 영향을 흡수한다. 기존 뮤지션들의 음악을 변주하며 자신만의 음악을 창조한다. 이 과정에서 올드팝 명곡들과 <싱 스트리트>의 OST가 귀를 즐겁게 해준다. 

아쉬운 점도 있다. 음악영화라는 장르적 한계 때문인지 몰라도 플롯과 내러티브, 연기가 감탄을 자아내지는 못한다. 특히 주인공들의 마지막 선택은 납득하기 쉽지 않다. 존 카니 감독의 전작 <원스>와 <비긴 어게인>이 뇌리에 뚜렷이 박히는 곡들을 선물한 반면, <싱 스트리트>의 OST는 상대적으로 무게감이 떨어지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첫사랑과 처음 만든 음악처럼 무언가의 '처음'이 주는 설렘은
늘 우리를 회춘하게 하리니.       



* 영화 <싱 스트리트> 예고편 

https://youtu.be/a7lhOFMyF0c


* 영화 <싱 스트리트> OST, 'Drive It Like You Stole It' (Official Video)

https://youtu.be/fuWTcmjnE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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