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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일기#011 록키

우리가 만들 사각의 링

'빠바~밤 빠바~밤'그 유명한 음악이 흐르고 카메라가 실베스터 스탤론의 러닝을 따라갑니다. 스태디 캠의 시초라는 영화사적 의미와 함께 <록키>는 70년대 많은 청춘의 마음을 뜨겁게 달군 영화였다고 하죠. 그시대 관객은 자신의 혼란스러운 자화상을 이 영화 속에서 발견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록키> 속엔 한 여인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로맨틱한 남자가 있었고, 미래를 포기한 채 뒷골목을 방황하던 패배자도 있었으며, 삶의 목표라는 것을 향해 달리고 싶던 도전자의 모습도 함께 있었으니까요.

청춘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낸 록키는, 그래서 그 또래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던 영화입니다. 심지어 록키를 연기한 실베스터 스탤론이라는 배우의 이야기까지도 영화만큼이나 극적이었죠. 그는 무명배우로 서러운 시간을 보내던 중 직접 쓴 <록키>의 시나리오를 통해 자신을 세상에 알리고, 배우로서 꿈을 이룹니다. 그래서일까요? 그의 절실함이 담긴 <록키>의 시나리오는 그의 인생과도 닮았습니다.

<록키>는 승자와 패자가 구분되는 스포츠, 그중에서도 몸과 몸이 치열하게 부딪히는 권투를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이런 이야기에서는 도전해야 할 챔피언이 있고, 그를 쓰러뜨리기 위해 주인공은 피나는 훈련을 하죠. 그리고 조력자를 통해 자신만의 필살기를 장착하고, 한 단계씩 성장하다가 최후엔 챔피언과의 경기를 펼치게 됩니다. 영화의 절정은 링 위에 올라가 챔피언과 극적인 결투를 펼치는 장면이 될 것이고, 주인공은 몇 번 쓰러지고 위기를 맞다가 최후의 한 방으로 경기에서 승리하죠.(일본의 만화 '더 파이팅'이 이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개는 이런 전개를 예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록키>는 링에서 승리하는 순간에 큰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영화는 마지막 결투 시퀀스에 20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을 할애했고, 그 어떤 화려한 기술(뎀프시롤 같은)을 전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권투의 꽃, 통쾌한 KO승을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대신에 카메라는 록키가 맞고, 또 맞으면서도 링 위에서 버티는 모습을 담는 데 집중하죠. 영화의 카메라는 한 남자의 시궁창에 처박힌 인생을 보여주고, 방황하는 그를 따라가는 데 열중합니다. 그러다 록키가 우연히 챔피언과 싸울 기회를 얻고, 그 빛을 움켜잡기 위해 달릴 때, 카메라도 함께 뛰며 그의 변화를 담아내죠. 한 남자가 인생에 처음 만난 기회와 이에 꿈틀거리며 반응하는 이야기. <록키>는 링 위의 상대가 아닌 제 삶을 찾기 위해서 지난날의 자신을 벗어나려는 남자의 모습을 담았고, 덕분에 권투를 초월해 청춘과 인생에 대해 말하는 영화가 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록키가 챔피언과의 대결을 앞두고 내리는 결정에 있습니다. 그는 링 밖에서의 승리, 혹은 자신의 삶에서의 승리를 원하죠. 그리고 이때, 영화 역시 사각의 링을 벗어나 더 큰 메시지를 던집니다. 세상이 주목하는 승부, 그리고 그의 인생을 바꿔버릴 수 있는 챔피언이라는 목표를 앞에 두고서 록키는 초조함을 느끼죠. ‘이길 수 없을 텐데....’라는 불안감. 난생처음 느낀 세상의 관심과 시선에서 도망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링 위에 오르고, 동시에 '승리'라는 단어를 다시 정의합니다.


그는 미디어와 세상이 주목하는 링 안에서의 승부에 연연하지 않는 선택을 합니다. 대신, 챔피언을 상대로 마지막 라운드까지 버티며, 자신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뭔가를 완주하고 싶어 하죠. 그것이 그에겐 더 가치가 있는 일이고, 그가 생각하는 승리입니다. 덕분에 사각의 링은 그만의 룰로 재구성됩니다. 마지막 공이 울린 후 재경기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인터뷰에, 그는 "아니요. 오늘 맞은 것으로 충분해요"라며 더는 승부에 관심을 보이지 않죠. 이미 그는 승리를 구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험난했던 라운드를 마치고, 연인 애드리안을 찾으며 외친 ‘I love you’라는 먹먹한 목소리는 그만의 승전보였을 것입니다.

70년도에 개봉한 <록키>는 현 시대의 청년과도 대화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우리 시대엔 '록키'같은 인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그의 승리에 박수를 쳐줄 수 있을까요? 사회의 기준에 맞게 목표를 정하고, 그 사회가 정한 '승리'라는 가치를 주입받은 이 시대의 젊은 초상들에게 록키는 자기 위안, 도취에 빠진 인물로 비칠 수도 있습니다. 록키가 자신의 패배를 승리로 포장하고, 합리화에 빠졌다며 비난을 받을 수도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우리 스스로의 꿈을 꿔 본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요. 취업이 꿈이 되고 있는 시대에 <록키>는 자신만을 위한 승부에 도전하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록키>는 뭉클함을 느끼게 하는 영화가 되죠. 우리만의, 나만의 사각의 링에서 경기를 할 준비가 되었는가.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자신만의 목표를 찾으려 했기에 록키는 청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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