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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든] 올리버 스톤, 건조함이 만드는 파괴력

Appetizer#55 스노든

올리버 스톤의 영화를 만난다는 것
‘에드워드 스노든’을 조명한 이유
건조한 영화의 강렬한 파괴력


꼭 봐야겠다고 생각하다 놓쳐버린 영화들이 있다. 매주 쏟아지는 영화의 홍수 덕에, 놓치는 영화의 빈도는 점점 더 많아진다. 그리고 그런 영화들만 모아 리스트를 만든다면, 올리버 스톤의 영화들이 상위에 있었을 것이다. 수많은 그의 영화 중 관람했던 것은 단 한편, <알렉산더>뿐이었다. <JFK>, <닉슨> 등 어딘가에서 들은 적 있고, 봐야겠다고 하고서는 못 본 영화. 그의 영화들이 ‘또’ 잊힐 때쯤, <스노든>이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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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스톤이 ‘스노든’을 조명한 이유

<스노든>은 제목에서 바로 알 수 있듯, 미국을 뒤집어 놓은 인물 ‘에드워드 스노든’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는 에드워드 스노든이 CIA에 들어가는 장면에서 시작해서 CIA를 나오는 순간까지를 담았다. 이렇게 한 인물을 조명하는 영화는 많이 있었고, 올리버 스톤도 미국의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와 37대 대통령 닉슨 등을 다룬 영화를 통해 인물과 그에 따르는 이슈, 그리고 메시지를 꾸준히 담아왔다.


<스노든>은 에드워드 스노든이 살아있고, 관련 문제가 진행형인 시점에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올리버 스톤 감독의 작품 중 특이한 위치에 있다. 스노든은 CIA에서 일하며 얻은 정보로, 정부가 정보망을 이용해 개인의 사생활에 쉽게 접근할 수 있음을 폭로했던 인물이다. 이 폭로는 안보와 애국이라는 명분 아래, 미국 정부가 모든 국민을 넘어 전 세계를 감시 아래에 두고 있었음을 밝힌 엄청난 사건이었다. 이 일로 에드워드 스노든은 지금도 미국을 피해, 몸을 숨긴 채 살고 있다.


올리버 스톤은 에드워드 스노든의 행위를 옹호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을 것이다. <스노든>은 ‘감시당해온’ 국민들에게 미국 정부가 했던 일과 스노든의 선택을 알리기 위한 수단이며, 감독 스스로가 에드워드 스노든의 행위에 관해 이미 가치판단을 마쳤음을 보여준다. 재연 드라마적 성격을 가지는 <스노든>은 영화의 말미에 가서야 감독과 에드워드 스노든이 하고 싶었던 말을 직설적으로 풀어 놓는데, 여러 의미에서 영화가 현실로 찢고 나오는 강렬한 순간을 목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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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함이 만드는 영화의 파괴력

조셉 고든 레빗의 연기를 보는 건 늘 즐겁다. 그런데, 이번에 그가 해내야 했던 것은 조금 까다롭다. 절대 에드워드 스노든을 초월한 이미지를 만들어선 안 된다는 과속 방지턱이 있었다. 그 한계를 앞에 두고서 조셉 고든 레빗은 에드워드 스노든이 갈등한 긴 시간을 무던히 잘 견뎌낸다. 그러다 올리버 스톤은 에드워드 스노든의 진짜 얼굴에서 호소력을 노리는데, <스노든>이 이를 어떻게 해냈는지 보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올리버 스톤은 현실의 뉴스 및 영상 자료를 가져와 <스노든>을 보완한다. 지금 관객이 보는 이야기가 불과 얼마 전, 실제로 일어났던 일임을 조셉 고든 레빗의 재연과 뉴스를 교차로 보여주며 전개했다. 앞에서 재연 드라마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올리버 스톤의 연출력을 비하하는 게 아니라. 그가 이 영화에서 보여준 건조한 느낌, 그 거리감을 향한 놀라움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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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식적이고 분노할만한 사실들 앞에서, 올리버 스톤이 감정적으로 영화를 포장하지 않으려 애쓴 흔적이 보인다. 감독은 관객에게 뭔가 강요하는 대신 그들이 얻은 정보만으로 분노하고 반응하게 하려했다. 신파적 요소를 추가하거나, 캐릭터가 더 폭발하는 지점을 만들 수도 있었고, 더 적극적으로 카메라를 개입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올리버 스톤은 그러지 않는다. 묵묵히, 건조하게 바라본다.


그러다 <스노든>은 엔딩에서 다양한 현실 자료들을 나열하는데, 여기에서 영화의 ‘힘’이 집약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조셉 고든 레빗을 퇴장시키고 보여주는 이 부분의 편집은 <스노든>에선 가장 현란해 보인다. 그리고 영화가 끝에 다른 이 지점에서, <스노든>은 실제 정보의 조합만으로도 관객의 마음을 뒤흔들어 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가공된 영화보다 실제의 사건들이 더 흥미롭고 관객이 뜨거워지는 순간. 영화가 멋스럽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순간. 프리즘으로 정부의 시커먼 속을 바라본 느낌. 이게 올리버 스톤이 <스노든>으로 해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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