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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Feb 22. 2017

[그레이트 월]1800억으로 빚은 빚덩이

Appetizer#56 그레이트 월

화려한 색채와 멋스러운 무예
1,800억 원으로 빚은 빚덩이


장예모 감독, 월드워Z 제작진, 본 시리즈의 작가, 그리고 맷 데이먼. 각자가 가진 필모그래피 만으로도 놀라운 이들이 모이면 어떤 작품이 완성될까. 우선, 제작비가 압도적이다. 약 1,800억 원. 이 돈이면 최근 이슈가 되었던 군함도(제작비 약 220억)를 8편 만들고도 남는다. 이 거액을 들여 구현하려 한 것은 인공위성에서도 보인다는 만리장성으로, 역시 스케일이 남다르다. 이렇게 <그레이트 월>은 껍데기부터 ‘대작’이라고 소리치는 영화다.



화려한 색채와 멋스러운 무예

<그레이트 월>에서 관객을 눈을 사로잡은 것을 강렬한 색채다. 보병, 궁병 등 부대별로 색감이 다른 갑옷을 입고 있는 군대의 움직임은 물감이 어우러지는 듯 화려했다. 이 색채의 움직임과 조화 만리장성을 지키는 부대에 신비한 느낌을 부여하고 있었다.


더불어 부대의 일사불란하면서도 우아한 움직임은 무용을 연상하게 한다. 덤으로 <적벽대전> 시리즈에서 볼 수 있던 진법도 볼 수 있으니, 군대를 통해 보일 수 있는 멋은 모두 담은 듯하다. 장예모는 강렬한 색감과 무용과도 같은 움직임을 통해 <그레이트 월>에 다양한 판타지적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었다.


장예모 감독에 관해 약간의 조사를 해보면, 그는 촬영하는 일로 영화를 시작했다고 한다. 덕분에 색채와 구도 등의 미장센을 구성하는 데 강점을 보였다. 그리고 ‘중국적인’ 표현을 세계에 알려 명성을 쌓았다고 한다. 이런 그의 이미지 구현에 관한 강점들이 <그레이트 월>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되어 있었다.



1,800억으로 빚은 빚덩이가 될 영화

앞서 영화의 장점을 말했지만, 딱 저기까지가 이 영화를 좋게 봐줄 수 있는 지점이다. 작년의 <엽기적인 그녀2> 이후, 창피함이 관람자의 몫이 되는 경험을 다시 하게 되는 데 채 1년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영화에 관한 호불호를 넘어 <그레이트 월>은 무성의한 면이 보여, 분노를 느끼게 하는 괴작이다. 앞서 개별적으로 뛰어난 이들이 모여 만들어낸 영화는 그들 이름의 아우라만 남은 거대한 잡탕이 되었다.


이 영화는 섞이려고 하지 않는 이미지들을 억지로 붙잡아 둬, 보는 이가 민망하고 무안한 지경에 이르게 한다. 동양의 배경에 서양의 배우가 뛰어들어 화합과 조화를 보이고자 했으나, <그레이트 월>이 보여준 것은 이 둘 사이의 거리감뿐이다.


이전에 <게이샤의 추억>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이 영화는 일본의 게이샤에 관한 영화임에도 ‘영어’로 제작되어 무척 어색했었다. 이런 실수를 <그레이트 월>이 반복한다. <그레이트 월>은 어떻게든 맷 데이먼의 얼굴을 이야기의 중심에 두려 했다. 그 덕에 중국 전설의 중심에 서양인이 위치해 따로 노는, 기이한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이미지도 그렇지만 이야기 속으로 맷 데이먼을 끌고 오기, 무리한 설정과 낭비되는 요소가 너무도 많다. 어색한 이들의 동거를 보는 것은 유쾌한 경험이 못 된다. 내용의 개연성 및 시나리오의 탄탄함은 굳이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괴물의 형태 및 CG의 구현도 만리장성의 전설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영화 속 극강의 적 ‘타오티에’는 조금 철 지난, 괴수물의 낌을 풍긴다. 이 이미지에 과연 관객이 몰입할 수 있을까, 있기를 바란 걸까. 10년 전의 기술로 구현된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의 성벽전투가 <그레이트 월>이 보여준 액션보다 훨씬 흥미롭고 박진감 넘친다. 자본과 진보한 기술(예를 들면 스크린 X)만으로는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없음을 몸소 증명한 것이 <그레이트 월>의 가장 위대한 성과다.


거의 모든 요소가 따로 노는 <그레이트 월>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지 못할 것이고, (영화를 관람했다면, 이런 예상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다행인지, 혹은 불행인지 <그레이트 월>은 전 세계 상영을 통해 제작비를 회수했다고 한다. 금전적으로 빚은 지지 않았다. 아니, 흥행에 성공한 것 같다. 짧은 시야를 가졌던 글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어야겠다고 반성한다.) 1,800억이란 제작비가 준 명예와 훈장은 결국, 어마무시한 빚으로 돌아올 것이다. 빛이 되고자 했으나 빚이 되어버린 작품. 왠지 모르겠으나, 이 영화를 보며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라스트 에어밴더>가 떠올랐다. 그 당시 관람할 때 느꼈던 공포와 충격을 되새김질하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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