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petizer#61 해빙
의문을 하게 하는 캐릭터들
반전에 반전이 만드는 결과물
얼었던 물이 녹자 한강에서 떠오른 시체, 그리고 보이기 시작하는 살인의 흔적. <해빙>은 연쇄 살인자를 찾는 과정을 담은 스릴러이며, 승훈(조진웅)이 겪는 공포와 불안의 심리를 표현한 영화다. 연쇄 살인사건으로 유명한 경기도의 한 도시와 살인자, 그리고 한강. <해빙>을 요약하는 이 세 가지 키워드는 재미있게도 국내의 한 감독을 떠올리게 한다. 한강에 나타난 괴물을 다룬 영화 <괴물>, 그리고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 <살인의 추억>을 연출한 봉준호 감독이 생각났다면 너무 멀리 갔을까. 그 덕분에 더 기대를 하고 관람했던 영화다.
<해빙>은 승훈이 경기도의 한 도시로 이동하며 시작한다. 이 도시는 연쇄 살인의 그림자가 짙고, 이사를 온 승훈은 무엇인가 하나씩 감추고 있는 듯한 인물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이 인물들이 ‘감추고 있는 무엇인가’를 알아가고, 그 속에서 호기심을 가지게 하는 게 <해빙>의 재미다. 신구, 김대명, 송영창, 이청아 등의 배우들은 감추는 연기를 잘해냈고, 덕분에 영화는 긴장감을 조성하는 데도 성공했다.
특히 김대명이 눈에 띈다. 조진웅의 불안한 표정만큼이나 그의 섬뜩한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조진웅과 김대명이 함께 있는 장면에서 힘의 우위가 김대명에게 있다는 건, 관객이 알던 두 배우의 이미지와 달라 생소함을 준다. 조진웅은 여태 잘 보여주지 못한 주눅 든 남자의 모습을, 김대명은 <미생>의 김 대리의 모습에서 완전히 벗어나 강렬한 모습을 보이는데, 이들의 충돌에서 오는 재미가 있다.
<해빙>엔 스릴러가 가져야 할 긴장감, 두뇌싸움, 그리고 야심 차게 준비한 반전까지 있다. 영화는 시작과 함께, 승훈의 불안한 심리를 표현하면서 스릴러 특유의 의문스럽고, 차가운 분위기를 만든다. 그리고 극이 진행될수록, 승훈 주변의 캐릭터들이 입체적으로 표현되며 이야기는 점점 미궁으로 빠진다. 그렇게 이 마을과 살인사건의 비밀, 그리고 승훈의 연관성 등이 얽히면서 영화에 가속도가 붙을 때, <해빙>은 준비한 반전의 카드를 하나씩 꺼내 승부를 건다.
반전이 꼬리를 무는 <해빙>의 중‧후반부는 충격과 혼란을 동시에 준다. 이 반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영화를 향한 호불호를 가를 것이다. 영화는 내내 관객과 머리싸움을 치열히 하며, 호시탐탐 관객의 뒤통수를 치려고 한다. 그러면서 이야기의 결이 두꺼워지는 효과를 노렸다. 하지만 준비한 이야기의 개연성이 정교하지 못해, 역효과를 낼 여지가 있어 불안해 보인다. 더불어, 반전을 풀어내기 위해 이야기가 ‘설명’의 느낌으로 변하는 순간부터 영화의 힘도 떨어진다.
정리하자면, <해빙>은 주인공의 ‘혼란스러운 심리의 표현’과 끝없이 ‘의심을 하게 하는 캐릭터들’이 주는 몰입감이 상당하다. 그런데 영화가 준비한 허술한 설정이 드러날수록, 이 몰입감은 얼음이 녹듯 사라졌다. 그렇게 <해빙>은 제목과 잘 어울리는 영화가 되어버린다. 앞서 글을 시작하며 떠올랐던,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을 다시 꺼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