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petizer#69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많았던 영화.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이하 공각기동대)은 그런 영화였다. 예고편이 공개되었을 때, 스치듯 지나가던 영화의 공간과 스칼렛 요한슨의 이미지는 과제를 잘 풀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고, 영화관으로 향해야 했다. 캐스팅 당시부터 화이트 워싱 논란으로 뜨거웠던 영화. 한국의 기자회견에선 질문의 패러다임을 바꾼 ‘두 유 노 박근혜 탄핵’으로 화제가 되었던 영화. 진짜 영화의 모습은 어땠을까.
<공각기동대>의 원작은 기계가 인간을 새롭게 정의하는 미래의 시간(2029년)을 다루며,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줬다. 이 애니메이션이 만든 세계관은 따로 기사로 다뤄야 할 만큼 방대하고 복잡하다. 그만큼 탄탄했기에 마니아층을 만들어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세계관은 할리우드에도 영향을 줬는데, 시대 말 최고의 명작 중 하나인 <매트릭스>의 감독인 워쇼스키 자매(당시 형제)가 영감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공각기동대의 원작과 고스트 인 더 셀을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매트릭스 시리즈와 이번 공각기동대를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이번 <공각기동대> 역시 기계의 관계와 인간의 정체성에 관해 묻는다. 하지만 원작의 분위기를 옮겨오는 데 들인 노력에 비해, 세계관 자체는 최대한 쉽게 보여주려 했다. 이는 복잡한 세계를 간략히 보여주면서, 원작을 접하지 못한 새로운 관객들을 유입하기 위한 할리우드의 전략으로 보인다. ‘공각기동대’라는 콘텐츠의 진입 장벽을 낮춘 것이다. 그렇게 <공각기동대>는 원작의 이식과 새로운 관객의 유입이라는 숙제를 한 번에 해결하려 했다.
이러한 변화로 원작의 색채가 많이 옅어진 <공각기동대>는 원작 팬들에겐 많은 논쟁을 불러올 것이다. 미리 본 관객들이 <로보캅>을 떠올리기도 했는데, 그만큼 <공각기동대>가 기존의 복잡한 세계관을 할리우드의 대중적 이야기로 중성화했다는 걸 예상할 수 있었다. 이 선택은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진입장벽을 낮춘 이 노력이 새로운 관객을 유입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다루고자 하는 주제의 심오함이 떨어졌다 해도 <공각기동대>가 보여주는 이미지의 디테일이 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루퍼트 샌더스 감독이 창조한 도시는 스칼렛 요한슨의 이미지만큼이나 매혹적이었다. 근미래를 표현한 공간은 ‘홀로그램’들이 가득 채우고 있는데, 디지털화된 공간이 주는 기괴함과 신선함이 독특하다. 특히, 홀로그램은 저마다 인류의 미래 모습을 보여주고, 그 내용이 꽤 철학적이기도 하다. 메인 스토리에 버금가는 복잡한 질문을 던지기에, 이 도시의 디테일을 살펴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화이트 워싱 논란이 있을 당시, ‘꼭 스칼렛 요한슨을 캐스팅해야 했을까’라고 생각하며 그녀가 선택한 ‘독이 든 성배’에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공각기동대>를 보고 나면, 그녀 외에 누가 이걸 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질 정도로, 스칼렛 요한슨이 제역할을 해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녀는 기계의 육체와 인간의 표정을 연기해야 했던 ‘메이저’란 옷을 완벽히 입었다. 냉소적이고 절제되어 있으면서, 정체성에 의문을 가지는 메이저의 심리는 클로즈업된 스칼렛 요한슨의 차가운 표정으로 전달된다. 그리고 육체의 기계성과 강인함은 풀샷의 액션으로 표현된다. 메이저의 움직임이 어딘가 과장되고 딱딱한 느낌이 있는데, 이는 어색하다기보단 로봇의 느낌을 잘 살린 좋은 연기로 보인다.
앞서 잘 설계된 <공각기동대>의 도시 속을 걷는 메이저의 모습과 스칼렛 요한슨이 연기한 메이저는 하나의 이미지로 조화를 잘 이룬다. 고층의 건물에 그녀가 우두커니 서서 도시를 응시할 때의 느낌은 너무도 매력적이다. 이 장면에서 만큼은 원작이란 족쇄를 잊어도 좋을 것 같다. 스칼렛 요한슨이라는 분위기 깡패가 만드는 이런 장면이 아마도 <공각기동대>에 관한 기억 중 끝까지 살아남아 아른거리지 않을까. 메이저에게 남은 기억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