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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Apr 14. 2017

위대한 소설을 ‘만든’ 천재들

Appetizer#75 지니어스


어떤 단어로 글을 시작해야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이 글뿐만이 아니라, 매번 글을 쓰면서 마주하는 최초의 고민이며, 어려운 문제다. 하나의 단어, 하나의 조사, 쉼표의 위치 등 백지에 무언가를 쓴다는 건 무수히 많은 고민을 동반한다. 이 글을 열면서도, 꽤 오랜 시간 단 한 글자를 쓰지 못했다. 썼다가 지웠다가, 그리고 또 썼다가. 영화에 관한 짧은 프리뷰를 쓰는 게 이런데, 긴 소설 한 편엔 얼마나 많은 고민이 뒤따를지 끔찍해 보인다.


짧은 글을 끄적이며 심한 엄살을 부렸다. 글쓰기에 관한 영화 <지니어스>를 봤더니, 괜히 위로를 받은 느낌에 하소연을 풀어 놓았다. 예상했겠지만, <지니어스>는 소설을 만드는 사람들에 관한 영화다. 소설을 쓰는 사람이 아닌,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한 표현이 중요하다. 영화는 1900년대 초, 미국의 위대한 작가 토마스 울프(주드 로)를 발견하고, 그의 글을 소설로 발간되게 한 편집자 맥스 퍼킨스(콜린 퍼스)를 중심에 둔다.



한 편의 위대한 소설 뒤에 있는 작가는 독자에게 미지의 대상이자 범접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존재다.  <지니어스>는 『천사여, 고향을 보라』, 『때와 흐름에 관하여』, 『거미줄과 바위』, 『그대 다시 고향에 가지 못하리』라는 소세계들을 창조한 신 ‘토마스 울프’의 위치를 끌어내린다. 대신, 영화는 그도 수없이 방황했던 한 명의 연약한 인간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역사에 남은 소설이 어떤 인간적 고민과 방황, 갈등을 거쳐 탄생했는지 알게 한다. 


소설의 편집자인 ‘맥스’는 관객이 잘 모르던 인물이다. 그는 토마스 울프의 진가를 알아챈 안목을 가졌고, 뛰어난 소설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애쓴 조력자다. 위대한 업적에 가려있던 이런 인물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지니어스>의 시점은 독특하다.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고 숨어있던 천재를 보여주고, 토마스 울프의 소설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킹스맨: 골든 서클>을 기다리는 관객에겐 콜린 퍼스를 미리 볼 수어 좋은 선물이 될 영화다. 점잖고, 이성적이며 차가운 이미지의 그가 소설의 탄생을 위해 열변을 토하는 ‘산파’가 될 때, 한 편의 예술이 탄생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주드 로와 니콜 키드먼을 보는 것 역시 즐거운 일이다. 광기를 가진 소설가와 그를 바라보는 여인의 모습에선 항상 묘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지니어스>가 작가 홀로 글쓰기와 싸우는 이야기였다면, 무척 고단하고 괴로운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채워주는 흥미로운 인물들이 많아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한 편의 마스터피스는 그것이 탄생하는 과정만으로도 좋은 이야깃거리가 된다. 그걸 보여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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