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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Oct 30. 2015

영화 일기#002 마션

우주라는 공간, 그리고 공감

언제부터인가 가을엔 우주를 여행하는 영화가 도착하고 있습니다. 2013년 <그래비티>, 2014년 <인터스텔라>, 그리고 올해는 <마션>. 관객들은 가을의 맑고 높은 하늘에서 광활한 우주를 느끼는 걸까요. 비교적 비수기에 속하는 시기임에도 많은 관객이 영화관에 올라 우주여행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블레이드 러너>, <프로메테우스>의 리들리 스콧과 <인터스텔라>의 맷 데이먼이 보여줄 올해의 우주는 어떤 모습일까요?


예상보다 큰 흥행을 보여준 <마션>

의외였습니다. 이렇게 많은 국내 관객이 <마션>을 좋아하리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리들리 스콧이라는 감독을 좋아하는 만큼, 그가 최근에 보여준 묵직하고 어두운 이야기들이 흥행과는 거리가 멀 것이라 생각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화려한 영화가 절대 아니죠. <마션>은 <그래비티>처럼 긴박감을 느낄 수 있는 영화가 아닙니다. 재난 영화라기엔 너무도 평온합니다.


그리고 <인터스텔라>처럼 인물 간의 갈등이 많이 얽힌 영화도 아닙니다.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가 보여주는 1인 극에 가깝죠. 그리고 앞의 두 영화가 얼마 없는 시간 속에서 살려고 위험에 뛰어드는 영화였다면, <마션>은 늘어진 시간 속에서 생존을 위해 버티는 영화였습니다. 만약, 화성이 토해내는 재해와 맷 데이먼의 숨 막히는 액션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코드가 맞지 않아 지루함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이 엄청난 흥행을 어떻게 생각해봐야 할까요. 정말, 드높은 가을 하늘이 주는 분위기가 우주의 그것과 닮았다는 가설을 세워봐야 할까요. 이번 글에서는 <마션>이 영화관으로 관객을 모으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합니다.


우주가장 영화적인 공간

우주에 최초로 발을 내디딘 사람은 누구인가. 너무 쉬운 질문인가요? 아마도 많은 분이 ‘닐 암스트롱’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진실 혹은 거짓에 대한 공방이 있지만, 기록상 인류가 최초로 달에 간 것은 1969년입니다. 그런데 ‘닐 암스트롱’보다 훨씬 전에 달에 도착한 인간이 있었습니다. 인류 최초의 달 착륙이 있기 무려 67년 전 ‘조르주 멜리에스’는 달에 우주 비행선을 쏘아 올렸습니다.


1902년에 그런 기술이 가능했을까요? 라이트 형제가 ‘나는 기계’의 특허를 등록했던 것이 1905년이라 합니다. 하늘을 나는 기술 없이 달로 우주선을 보냈다? 과학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1902년 조르주 멜리에스의 <달세계 여행>에서는 있었던 일입니다. 수수께끼는 끝내고, 본론으로 들어가야겠네요. (이미 알고 계신 분들에겐 시시한 이야기였겠지만) 조르주 멜리에스는 영화감독입니다.


조르쥬 멜리에스는 최초의 SF영화를 만든 감독입니다. 그는 활동사진이라 불리던 카메라와 필름을 상상을 표현하는 도구로 활용했죠.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생략하고(더 알고 싶은 분에겐 마틴 스콜세지의 <휴고>라는 영화를 추천합니다), 이 초창기 영화감독이 ‘상상력’을 표현할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을 말하고 싶네요. 조르주 멜리에스 덕분에 영화는 탄생한 지 10년도 되지 않아서, 그 어떤 예술도 도달하지 못했던 공간으로 관객을 초대했습니다. 우주라는 미지의 공간. 이 상상력을 따라잡기까지 67년이 더 걸렸다고 하니, 이 정도면 이성·과학에 대한 상상력·영화의 승리라 말해도 되지 않을까요?


영화의 뛰어난 속성 중 하나는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속성을 잘 살린 것이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죠. 그래서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가장 ‘영화적’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거대한 스크린을 통해 현실에선 만날 수 없는 상상의 공간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경험. 이는 영화가 선물하는 큰 즐거움입니다. <그래비티>, <인터스텔라>, 그리고 <마션>은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기 힘든 우주를 보여주고, 현실과 상상 속의 공간을 오가며 관객을 몰입하게 하죠. 관객이 못 가본 공간에 대한 동경, 미지의 공간에 대한 호기심을 스크린 속의 세계가 해소해 줍니다.


황무지에서 살아남기

앞에서 우주 영화 전체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를 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마션>의 매력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마션>만이 가진 매력을 말해보려 합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다른 우주 영화를 떠올릴 수도 있지만, <캐스트 어웨이>를 생각한 분도 있을 것입니다. 와트니 박사가 화성에 홀로 남았다면, <캐스트 어웨이>엔 무인도에 홀로 남아 배구공에 ‘윌슨’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외로움을 견딘 톰 행크스가 있었죠.


두 이야기 모두 주인공이 고립된 공간에서 살아남기 위해 음식을 구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근차근 탈출 계획을 세워 실행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인간의 생존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죠.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버텨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의 위대함. 특히 <마션>은 화성에서의 길고 긴 생존의 과정을 독특한 캐릭터, 와트니를 통해 매우 유쾌하고 보여줍니다.


와트니는 이 영화의 모든 것입니다. 우주라는 공간보다도 이 캐릭터 자체가 두드러지죠. 사실 <마션>은 화성을 무대로 사용하고 있지만, 지구 어딘가에 있는 사막이라 해도 큰 이질감이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고립된 상황 속에서 와트니처럼 행동할 인간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스테이플러로 찢어진 상처를 봉합하고, (마취 없이 자신의 살을 직접 찌를 수 있다는 것부터가 놀랍죠) 물을 만들고, 감자를 재배하고, 의미 없을지도 모를 하루를 기록합니다. 남겨진 시간을 체념으로 채우는 선택 대신, 생존을 위해 시간을 확장할 방법을 찾는 비범함을 보여주죠.


그 와중에 와트니는 유머를 잃지 않습니다. 그 누가 봐도 비관적인 상황임에도 그는 유머를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가 정말로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어떤 태도가 더 긍정적인 결과를 끌어낼 수 있을지는 보여주고 있었죠. 그리고 그는 변화를 위해 위험을 받아들일 줄 아는 인물입니다. 비교적 안전이 보장된 기지를 떠나 탈출구를 스스로 마련하려고 하죠. 그는 기지에 정착해 구원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 탈출을 위해 직접 목숨을 건 모험을 감행합니다. 방사능부터 아이언 맨까지 그는 늘 죽음과 가까이 있는 선택지를 택하고, 능동적으로 위험을 돌파하려는 영웅적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와트니의 이런 점이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다가왔기에 <마션>이 사랑받고 있지는 않을까요.


이 험난한 과정에 등장하는 과학적 지식, 그리고 이를 담보로 한 사실성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재미입니다. 우주에서 물을 구하는 방법, 지구와 소통하기 위해 수식을 활용하는 방법, 우주선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시도하는 기상천외한 리모델링 등 평소에 볼 수 없는 과학적 지식이 화성이라는 황무지가 준비한 퀴즈를 풀게 해주죠. 인류가 쌓아온 과학의 업적이 와트니를 구하는 이야기로도 <마션>을 바라볼 수 있겠네요.


글을 맺으며 이 영화의 흥행을 조금은 다르게 바라보려 합니다. 와트니 박사가 긴 시간을 견뎌냈듯, 어떤 관객은 그처럼 ‘버티는’ 삶에 공감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가능성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구원과 행복은 언제 도착할지 모르지만, 버텨야 하고, 버티고자 하는 삶. 예를 들어 취준생에게는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취업이라는 구원, 소외계층에게는 언제 도달할지 모르는 관심 등.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확신도 없는 상황 속에서 긴 시간을 견뎌내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화성에서의 고립만큼 삶이라는 우주에서 고립을 느끼는 이들, 포기하지 않고 삶을 견뎌내는 이들에게 <마션>의 와트니 박사가 응원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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