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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Jun 27. 2017

<박열> 대신, ‘박열’을 선택한 이준익

Appetizer#96 박열

<박열>은 근래 이준익 감독의 관심사가 어디를 향해있는지 명확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사도>, <동주>에 이어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했다는 것(<박열>은 영화의 시작부터 실제 인물의 등장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동주>에 이어 1900년대 초가 배경이라는 점 등을 통해, 아직 그가 일제강점기에 머물러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준익 감독은 과거의 시간에서 발견한 인물과 그들이 만든 역사적 순간을 후대에 전하는 역사의 전달자 역을 충실히 하는 중이다.


이준익 감독은 역사 속에서 또 한 번 주옥같은 순간을 찾는 데 성공했다. 박열은 독특한 가치관과 행동으로 독립운동을 펼쳤고, 후미코와의 일화가 더해져 정말 영화 같은 삶을 살았다. 그리고 비교적 덜 알려진 인물이기에 영화화했을 때 관객이 흥미를 느낄 구석도 많다. 하지만, 이렇게 주목할 만한 인물에 비해, <박열>이 주는 감흥은 이준익 감독의 예전 작품만 못하다. 대신, <박열>은 ‘박열’이란 인물에게 도취된 인상을 주는 영화다. 그래서 역사물이라는 장르 외엔 <사도>, <동주>와 결이 많이 다른 영화다.



우선, 인물의 내적 갈등이 평면적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한 위인으로서 관객이 기대하는 '열사로서의 위대한 면’은 당연히 있지만, 그 외의 묘사가 아쉽다. 후미코(최희서)와의 이야기가 있지만, 그마저도 그 당시의 일화를 전해 듣는다는 것 외의 느낌을 받기 힘들다. 영화의 감성이 전작보다 건조해졌다. <사도>에서 봤던 영조의 시기심과 불안감, 그리고 <동주>에서 봤던 동주의 송몽규를 향한 열등감 등의 복잡한 정서를 느끼기 힘들다. 그런 특별한 심리와 관점이 <박열>엔 희미하다.


플롯의 배치도 평이해졌다. 자유로운 플래시 백을 통해 시간을 재조립하고 재해석하며 극에 리듬감을 줬던 <사도>와 <동주>에 비해, <박열>은 시간의 흐름을 거의 이탈하지 않고, 사건의 경과를 비춘다. 이런 무난한 전개 역시, 영화를 굉장히 건조하고 평범하게 만들었으며 위인전 혹은, 다큐멘터리적이다. 그래서 <박열>은 재연 그 이상의 감흥을 느끼기 어렵다.



이준익 감독은 그가 <사도>와 <동주>에서 도달한 역사극의 성취를 외면하고, <박열>을 연출했다. 할 수 있는데도 시도하지 않은 형식과 연출에 관해서는 의문을 가져봐야 한다. 아마도 이준익 감독은 ‘박열’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웠던 것 같고, 그 인물의 이야기만으로도 영화에 힘이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떠한 기교 없이 박열이란 인물을 대중에게 묵직하게 전달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이준익 감독이 선택한 정공법으로 영화의 매력은 다소 줄었다. 그 대신 박열이란 인물의 삶을 객관화해 알리는 데는 성공한 듯하다. 이번에 이준익 감독은 <박열>이란 영화 대신 ‘박열’이란 인물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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