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Jul 02. 2017

영화를 모욕한 대가(代價)

Appetizer#97 리얼

영화에 관한 글을 쓰면서 당혹스러운 경우가 있다. 크게는 두 가지인데, 영화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글을 쓸 때와 아무런 말도 쓰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리얼>을 본 뒤, 영화의 의미를 찾는다는 걸 포기했고, 그리 많은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영화를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싶지도 않았기에, 손이 가는 대로 글을 휘갈겨 쓰기로 했다.


언론 시사 이후 <리얼>은 줄곧 엄청난 비판과 함께 걸어왔다. 비판을 넘어 분노로 이어지는 경우도 잦았으며, 모처럼 많은 관객이 하나가 되는 기적을 보이기도 했다. 김수현, 이성민, 성동일, 이경영 등 배우들의 얼굴 외에 <리얼>은 그 무엇도 떳떳이 내세워서는 안 되는 영화다. 하지만, 배우들은 얼굴을 소모한 만큼 이 졸작에 인장을 남김 셈이고, 결과적으로 상당 부분 편집되었다는 이경영이 안도해야할 판이다. 드라마 <드림하이> 이후 실패한 적 없고,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아 온 김수현에게 이 상황은 너무도 낯설 것이다. 얼른 이 순간이 훌쩍 지나가 <리얼>이 언리얼(unreal)하게 느껴질 시기가 오길 바랄 뿐.



<리얼>은 영화 내적으로 무엇 하나 비판하지 않을 게 없는데, 이런 문제는 결국 감독의 역량 탓이다. <리얼>의 제작 과정을 조사하면, 이 거대한 ‘똥’이 어떻게 극장에 투척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감독이 중도 하차하고, 제작사 대표가 직접 연출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영화의 밸런스를 기대하기가 힘들다.


제작사 대표는 돈이 있었기에 영화를 찍었지만, 그 프레임을 채운 건 미장센도, 무드도, 연기도 아니다. 대신, 돈으로 빚은 헛된 망상 정도가 이를 대신하고 있다. 망상은 혼자 간직할 땐 꿈이라 포장 가능 하지만, 리얼이 되었을 땐 ‘똥’이다. <리얼>은 그 망상에 막대한 돈과 배우를 소모했고, 이는 거대한 똥이 되어 관객에게 투척 되었다. 덕분에 이 영화의 책임자는 영화를 향한 관객의 비판, 비난, 분노의 배설물을 처리해야 한다. 영화를 쉽게 본 이들, 돈만 있으면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이들은 영화를 모욕했기에,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박열> 대신, ‘박열’을 선택한 이준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