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제다이] 쌍제이에게 찾아온 위기, 혹은 기회

영화 일기#054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쌍제이에게 찾아온 위기
‘레이’의 아버지 찾기
한 세대를 마무리하는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의 계승과 새로운 시작


‘다음 편 감독 XX라고 만든 작품’.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에 관한 과격하지만, 공감되어 한참 웃었던 평이다. 여기서 말한, 스타워즈의 아홉 번째 시리즈를 연출하기로 내정된 감독은 ‘떡밥의 제왕’ J.J 에이브럼스(쌍제이)다. 그를 위기에 몰아넣은 <라스트 제다이>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단순히, 시리즈를 망쳐놨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영화에 관한 평가는 좋은 편이다.


<라스트 제다이>는 한국 개봉 전, 로튼 토마토 93%를(13일 새벽 기준) 받아 팬들의 기대감을 한껏 올려놨다. 심지어 한국 영화 평점계의 빛과 소금 박평식 평론가도 별 3.5개를 주면서 그 기대는 최고조에 달했다. 그리고 관람 후, 그 기대는 현실이 되었다. 대서사시를 잘 정리하고 계승한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는 시리즈의 골수팬과 새로운 팬들에게 새로운 시작, 새로운 이야기를 알렸다.



‘레이’의 아버지 찾기

지난 <깨어난 포스>의 전개와 구성이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과 너무도 흡사했기에, <라스트 제다이>는 <에피소드 5: 제국의 역습>과 평행 구조를 가질 것으로 예측하는 이들이 많았다. 참고로 <제국의 역습>은 대중문화 역사에 큰 획을 남긴 대사 "I am your father"(내가 네 애비다!)가 있는 편이다. 그래서 이번 편은 ‘누가 레이(데이지 리들리)의 아버지인가’에 초점이 맞춰지기도 다.


<라스트 제다이>의 레이 역시, ‘누가 내 아버지인가’를 찾아 헤맨다. 방대한 우주에서의 아버지 찾기, 자신의 뿌리를 찾는 과정은 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주인공의 숙명처럼 보인다. 그 답 속에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정해져 있기라도 하듯 말이다. 하지만 <라스트 제다이>는 그 숙명, 과거의 문제에 집착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이번 에피소드, 그리고 이후의 시리즈에서 찾을 가치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있다고 정리해 버린다. (<라스트 제다이>가 레이의 과거를 명확히 말하기는 했지만, 시리즈의 팬들은 여전히 이를 떡밥으로 남겨두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 세대를 마무리하는 영화

현재와 미래에 관심이 있는 건 레이의 아버지 문제뿐만이 아니다.(지금부터는 스포일러가 더욱 많다.) 지난 편에서 한 솔로(해리슨 포드)의 죽음으로 과거 시리즈에 속한 인물을 잘라낸 ‘스타워즈 시리즈’는 그 자리에 한 솔로의 아들, 카일로 렌(아담 드라이버)을 세웠다. 패륜적인 이야기를 통해 충격적인 효과를 주며, 세대의 교체를 성공적으로 이룬 셈이다.


그리고 <라스트 제다이>에서는 루크 스카이워커(마크 해밀)가 제다이의 자리를 새 영웅 레이에게 물려준다. 그리고 ‘스타워즈 시리즈’의 유산을 넘기고, 제다이의 소명을 다한 루크는 시리즈에서 아름답게 퇴장한다. 또한, 그는 수백 세대를 이어오던 제다이의 문서를 불태움으로써 구세대의 가치까지 완전히 없앤다.(사실, 이는 마스터 요다가 한 짓이다!) 반대 진영의 세대교체도 있다. 반란군 스노크의 자리를 사일로 렌이 차지하며, 이 우주 오페라는 완벽히 새로운 세대 간의 전투 구도로 양상이 바뀐다.


이젠 ‘스타워즈’는 과거 시리즈에서 무언가를 찾기보단, 다음 세대 캐릭터들의 새로운 이야기에 집중해야 한다. 쌍제이는 <깨어난 포스>에 지난 시리즈의 떡밥을 계승하고, 새로운 떡밥을 심으며 시리즈를 부활시켰지만, 다음 편에서는 완전히 새롭게 판을 짜야 할 것이다. 작가의 입장에선 완전히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하다는 점은 장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감독보다도 이 시리즈의 세계관에 관심이 많은 열성적인 팬들 앞에서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부담스러운 일이다.



새로운 세대가 계승한 가치

<라스트 제다이>가 보인 또 다른 가치는 ‘사랑하는 것을 지키는 것, 희생을 줄인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레이만큼 성장하는 건 포(오스카 아이작)인데, 그는 적을 하나라도 더 처리하는 게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고 믿었다. 이런 그의 가치관을 레아(캐리 피셔)와 홀도 제독(로라 던)은 동의하지 않았고, 포와 갈등하게 된다. 그러다 영화의 마지막에서야 포는 희생을 줄인다는 것의 가치를 배우고 생존자를 살리는 길을 택한다.


이렇게 포는 홀도 제독과 같은 많은 구세대의 희생을 목격하고, 살아남음으로써 미래의 희망이 되었다. 그는 새로운 지휘관이 되어야 하고, 새로운 스타워즈 시리즈의 미래를 이끌 인물이 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상징적인 장면이 하나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 포의 의견을 듣고 저항군들이 레아를 바라보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레아’는 “왜 날 봐”라고 말하며, 포의 말에 동의해준다. 앞의 통로를 두고, 뒤의 레아를 보던 저항군들이 다시 앞을 향해 나아간다. 그들이 나아가야 할 길은 더 이상 레아가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그녀의 가치관을 계승한 포가 제시한다. 이는 구세대의 레아가 새로운 리더의 자리를 포에게 양보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희생을 줄이는 것, 한 명이라도 더 구하는 것 등의 가치관이 기존 '스타워즈 시리즈'의 가치와 맞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저항군의 목숨 건 희생을 배반하는 가치라는 반발도 목격된다. 지난 두 번의 트롤리지라면, 백번 옳은 말이다. 그런데도 <라스트 제다이>를 위한 변명을 하자면, 레아와 지난 구세대의 인물은 지독한 전쟁을 겪고 무수히 많은 이들과 이별했던 세대다.(레아가 아들이 변했다는 상실감을 루크에게 표현할 때, 이 점은 특히 두드러진다. 문제의 로즈 역시, 언니를 잃었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전쟁을 통해 가치관에 변화 혹은 각성이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에피소드를 바라본다면 어떨까. 그리고 이를 에피소드 4 이후, 많은 전쟁을 겪은 우리 세계의 역사를 향한 각성으로 본다면 어떨까.



새로운 세대의 시작

R2-D2와 C-3PO, 츄바카가 남아있지만, 많은 구세대의 인물들이 시리즈를 떠났다. 한 솔로와 루크 스카이워커는 영화 속에서 이별했고, 캐리 피셔는 우리 곁을 떠나며 ‘스타워즈 시리즈’를 새로운 세대에게 물려줬다. 이 캐릭터들은 그들이 시리즈를 통해 각자가 배운 걸 새로운 캐릭터들에게 계승하고 퇴장했다. 그리고 ‘스타워즈’ 자체를 봐도 이 시리즈는 선과 악의 대립이라는 주제를 계승하고서는 많은 외관을 바꿨다.


<라스트 제다이>의 엔딩은 어린 예비 저항군이 우주를 바라보는 장면이다. 이렇게 영화 곳곳에 새로운 가치, 새로운 세대의 시작이란 주제가 넘실대고 있다. 새롭게 시작될 영웅들의 이야기는 어떤 모습일까. 쌍제이는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겠지만, 기다리는 관객의 입장에선 하루하루 설렘이 커져갈 것만 같다.(역시, 식상하다해도 이 시리즈엔 이 맺음말이 가장 적절해 보인다.) 쌍제이에게 포스가 함께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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