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일기#055 원더
올 연말, 가장 따뜻했고 행복을 줬던 영화. 이는 <원더>에 붙여주고픈 수식어다. 12월은 영화 시장 최대의 성수기로 블록버스터 시리즈 및 국내 배급사들의 대형 영화가 개봉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가 개봉했고, 한국 영화로는 <강철비>와 <신과함께-죄와 벌>이 무난히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12월은 ‘워킹 타이틀’로 대표되는 다양한 로맨틱 코미디 및 일상에서 사랑을 느끼게 하는 영화가 관객의 마음을 녹여주기도 하는 시기다. 올해, 그 역할을 해준 영화가 <원더>다.
<원더>는 얼굴이 남들과 다른 소년 ‘어기’(제이콥 트렘블레이)가 학교에 다니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다. 하지만 어기의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다. 가장 먼저 어기를 찍던 카메라는 남들과 다른 아이를 사회로 내놓는 어기의 부모 이자벨(줄리아 로버츠)과 네이트(오웬 웰슨), 동생을 위해 많은 걸 양보하며 살았던 누나 비아(이자벨라 비도빅), 그리고 어기와 만나는 친구들을 차례차례 담는다. 그렇게 영화는 어기 주변의 공동체를 보여주며 그들이 사는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원더>의 가장 뛰어난 연출은 어기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이 영화는 어기를 불행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이 소년을 남들과 다르게 표현하지 않으려 했다. 어기는 외모 콤플렉스가 있지만, 이는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상처 중의 하나로 표현된다. <원더>의 카메라가 비추는 사람들은 어기처럼 모두 저마다의 상처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어기는 남들처럼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 중의 하나가 된다.
카메라가 어기의 상황을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볼 법도 했는데, <원더>의 어기는 유머러스하고, 장난 많은 발랄한 소년이다. 그가 자신의 콤플렉스를 인지하고, 스스로 그것을 유머의 요소로 삼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다. 어기는 스스로 타인의 불편한 시선을 차단하고 이야기할 줄 아는 소년이다. 그리고 줄리안(브라이스 게이사르)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등장인물은 배려를 아는 따뜻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서로 오해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모두가 자신의 의지로 타인과 소통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 어기 주변 인물들이 유독 따스한 영화다.
<원더>엔 집 안에만 있던 어기가 타인과 함께할 수 있는 구성원이 되는 과정이 있다. 소년은 타인과 살 수 있는 존재로 성장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어기의 성장만 있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 더 많이 성장하는 건, 어기 주변의 사람들이다. 어기의 친구들은 편견을 버리고, 그와 친구가 되기 위해 손을 내민다. 처음엔 어기의 외모만 봐도 피하던 아이들이 내면을 통해 소통하는 법을 배운다. 그들은 이 특별한 친구 덕에 어른이 되어간다. 영화의 마지막에 어기에게 준비된 보상은 그의 성장과 승리가 아닌, 그를 위해 진심으로 웃어주는 친구들이었다.
어기의 친구들 외에도 성장의 요소는 더 찾을 수 있다. <원더> 속엔 저마다의 고민을 가진 인물들이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이 있다. 영화에는 큰 사건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다양하게 상처받는 이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 상처를 ‘사람’으로 치유하고 함께 웃는다. 좋은 사람들이 정말 많은데, 그들의 삶을 더 엿보고 싶을 정도였다. 이렇게 <원더>는 자극의 강도를 극단으로 끌어올린 영화들(예를 들어 신파나 볼거리)과 달리 일상의 담백함과 훈훈함이 있는 영화다. 그리고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기에, 이 겨울, 따뜻함과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로맨틱 코미디의 히로인 줄리아 로버츠의 연기가 특히 오래 기억에 남을 영화다. 어기를 연기한 제이콥 트렘블레이의 연기도 두말할 것 없이 좋지만, <노팅 힐>의 감성이 생각나는 계절이라 그런지 줄리아 로버츠의 얼굴이 특히 반가웠다. 이전보다 주름이 보이는 그녀의 얼굴은 비교적 적은 대사와 행동만으로도 큰 감정의 울림을 준다. 영화 대사에도 ‘주름은 인간이 살아온 길을 보여주는 지도’라는 대사가 있는데, 나이가 들어가는 줄리아 로버츠의 얼굴을 본다는 건 독특한 느낌을 줬다. <원더>가 보여주는 삶의 아름다운 시간들이 그녀의 얼굴에도 깃든 것 같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자극이 많은 영화에 지친 관객에게 <원더>를 권한다. 영화관에서 모처럼 힐링에 다가갈 기회를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