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즈 러너: 데스 큐어] 이 시리즈가 남긴 것들

영화 일기#057 메이즈 러너: 데스 큐어


오디션의 과잉과 ‘메이즈 러너’ 시리즈
단 한 명의 친구를 위하여
구세대의 공간을 탈출하는 신세대
마지막 보물, '메이즈 러너'의 아이들


오디션의 과잉과 ‘메이즈 러너’ 시리즈

언젠가부터 어린 참가자들이 등장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많아졌다. <슈퍼스타 K>로 시작한 이 서바이벌 장르는 다양한 형태로 변화해왔고, <프로듀스 101>이라는 초대형 프로젝트로 이어지기도 했다. 오디션 속의 참가자들은 협동하기도 하고, 서로 의지하며 정을 쌓기도 하지만, 결국 이런 프로그램의 핵심은 경쟁이다.


결국, ‘약육강식’의 세련된 버전인 오디션 서바이벌은 최후의 승자가 누구인가를 보기 위한 여정이다. 그리고 이런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는 단순한 관전자를 넘어 승자를 선택하는 결정권자가 되어 이 게임에 참여한다. 유희와 생존이 섞인 이 기괴한 프로그램은 현대판 콜로세움이며, 그 속에서 카메라는 참가자의 민낯과 갈등을 집요하게 담는다. 물론, 카메라 밖에서는 투표를 통해 시청자의 민낯이 드러난다.


movie_image (1).jpg


오디션 프로그램을 향한 삐딱한 시선으로 글을 열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순기능도 분명 있을 것이니, 앞의 의견을 무조건 옳다며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오디션 프로그램이 과잉인 시대를 사는 우리에 관해 생각하고 싶었다. 그 잔혹한 게임에 참여하는 절박한 도전자들에게 시청자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말이다. 어린 소년과 소녀들의 생존을 다룬, ‘메이즈 러너’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메이즈 러너: 데스 큐어>에 관해 이야기하는 시점에 던지기 좋은 주제일 것 같았다. 이 시리즈가 퇴장하면서 10대들을 통해 보여준 것은 무엇이고, 남긴 것은 무엇일까.


<메이즈 러너: 데스 큐어>는 안정적으로 시리즈를 마무리한 영화다. 지난 두 편에서 펼쳐놓은 이야기를 잘 모으고, 잘 닫았다. 시리즈의 안정적인 완결이 이번 편의 가장 큰 성과다. 이 점을 제외하면, 첫 번째 편의 미로가 보여준 참신함, 스코치 트라이얼에서 좀비(크랭크)가 만든 스펙터클에 버금가는 무언가를 제시하지 못하는 편이다. 그래서 이번 편은 딱히 못 만든 느낌도 없지만, 그렇다고 흥미롭지도 않은 범작에 머문다. 그래서 앞의 질문 ‘이번 시리가 남긴 것’에 관해 더 생각해봐야 했다.


movie_image.jpg


단 한 명의 친구를 위하여

‘메이즈 러너’ 트롤리지에서 어린 주인공들이 보여준 가치관은 명확하다. 그들을 위협하는 위키드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을 합리화하는 집단이라면, 토마스(딜런 오브라이언) 일행은 ‘소를 위해 대가 배려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모두가 나설 수 있다고 말한다.


<메이즈 러너: 데스 큐어>는 민호(이기홍)라는 한 명의 친구를 구하기 위해 그의 친구들이 불길에 뛰어드는 이야기다. 그들의 판단 근거는 합리성 따위로 계산할 수 없다. 민호를 구하러 가겠다는 토마스에게 빈스(배리 페퍼)는 한 명을 위해 무모한 희생을 치를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힌다. 하지만 토마스와 친구들은 그런 이성적인 판단은 접어둔다. “우리 친구 아이가!” 식의 의리와 당위성의 문제로 접근하는 걸 택한다.


효율을 따지는 경제성, 이성적인 판단을 요구하는 합리주의, 절대다수의 행복을 기준으로 두는 공리주의 따위의 가치에 아이들은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이런 기준에 분노를 보인다. 영화의 후반부에 아래에 위치한 토마스가 그들을 위에서 바라보는 잰슨(에이단 길렌)에게 엿을 먹이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 장면은 토마스가 잰슨에게 토하는 분노이자, 잰슨이 군림하는 세상의 룰을 향한 저항으로 봐도 좋을 것 같다.


movie_image (2).jpg


구세대의 공간을 탈출하는 신세대

<메이즈 러너: 데스 큐어>는 마지막 도시이자 절대 권력이 모여 있는 공간이 불타오르며 마무리된다. 재미있게도 마지막까지 그 불타는 도시 속에서 싸우는 건 구세대의 어른들이다. 어른들이 치고박고 싸우는 혼란을 틈타 아이들은 탈출한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가치관을 가진 아이들은 기존 도시의 체제를 뒤엎거나 권력을 쟁취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았다. 혹은, 새로운 시대가 머물만한 안식처가 그 도시엔 없었다. 그래서 어른들이 만든 세계와 그 세계의 룰을 빠져나가는 선택을 한다. 그 룰 밖에 세이프 헤븐, 즉 천국이 있었다.


이는 신세대가 구세대의 체제 내에서 저항하는 영화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는 결말이다. <설국 열차>의 요나(고아성)는 기차 밖으로 나가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헝거게임>의 캣니스(제니퍼 로렌스)도 경기장을 부수고 나가는 선택을 했다. 두 영화 속의 신세대는 구세대의 공간에서 탈주해 새로운 가치와 희망을 찾는다. <메이즈 러너: 데스 큐어>도 아이들의 성장기 끝에 완전한 탈출을 제시하며 앞의 영화들과 유사한 길을 걷는다.


movie_image (3).jpg


마지막 보물, '메이즈 러너'의 아이들

‘메이즈 러너’ 시리즈가 남긴 마지막 보물은 배우들이다. <헝거게임>에 제니퍼 로렌스가 남았듯(물론, 제니퍼 로렌스는 헝거 게임이 아니었어도 대배우가 되었겠지만) ‘메이즈 러너’엔 딜런 오브라이언, 토마스 생스터, 이기홍 등의 젊은 배우가 남았다. 이들은 현재 다른 영화에서 주연을 맡으며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토마스 생스터의 모습을 보는 게 즐거웠다. 이 계절에 더 자주 생각나는 <러브 액츄얼리>의 샘이 어느덧 성장해 친구를 위해 위험으로 뛰어들 때,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여담으로 영화에서 뉴트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혹시 그의 과거가 <러브 액츄얼리>의 샘은 아니었을까 망상을 펼치기도 했다.)


<메이즈 러너: 데스 큐어>는 놀라움을 주거나, 엄청난 볼거리 및 재미를 보장하는 영화는 아니다. 다만, 시리즈를 무난히 완결 짓고, 이 시리즈 전체를 돌아보게 한다. 그렇게 이 시리즈가 하고자 하는 말을 되새긴다는 점에서 괜찮은 마무리였다. ‘메이즈 러너’ 시리즈는 많은 것을 남겼고, 시리즈의 팬이라면 이번 편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원더] 타인을 성장하게 하는 소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