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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Jan 05. 2018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영화에 가을이 없는 이유

영읽남의 벌책부록 -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괜스레 사진이 찍고 싶어지는 영화. 한여름의 녹색 이파리들이 보고 싶어지는 영화. 그리고 나만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아지트가 갖고 싶어지는 영화. 이번에 읽어볼 영화는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입니다. 개인적으로 사진 찍는 게 취미였던 시절이 있어서인지, 더 애틋하게 다가오는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주인공 시즈루(미야자키 아오이)의 돌직구 같은 사랑이 끝끝내 엇갈리는 과정이 상당히 가슴 아픈 영화이기도 했죠.



Relpay -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다시보기

마코토와 시즈루는 대학 입학식에서 처음 만난 사이입니다. 두 사람은 입학식에 참석하지 않는 아웃사이더들이었죠. 마코토는 피부병 약을 바르고 있는데, 이 약의 악취가 풍길까 두려워 사람을 피합니다. 시즈루는 남들보다 많이 성장하지 못한 몸 때문에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죠. 대신 시즈루는 비염이 있어 냄새에 민감하지 않은데, 덕분에 마코토가 시즈루에게 마음을 열 수 있었습니다.


이 만남 이후 두 사람은 단짝이 됩니다. 마코토는 자신의 비밀 장소를 소개하고, 나중엔 시즈루에게 사진 찍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도 하죠. 시즈루는 이런 마코토를 좋아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마코토는 시즈루를 친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즈루는 자신이 성장하면 마코토가 자신을 안 잡은 걸 후회할 거라며 도발하기도 하죠. 그리고 같이 자겠다고 말하는 등 당돌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미유키의 등장으로 위기를 맞이합니다. 마코토가 미유키를 짝사랑하기 시작한 거죠. 마코토는 미유키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시즈루를 서운하게 합니다. 시즈루와 자신의 비밀 장소에 미유키를 데려오기도 하죠. 여기서 시즈루는 아주 과감한 선택을 하는데요. 미유키와 더 친하게 지내기로 합니다. “난 단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싶었어”라는 이 영화의 명대사 중 하나를 말하면서 말이죠.


시즈루는 마코토를 좋아하지만, 그가 미유키와 잘 이뤄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마코토의 행복을 바라는 이 모습은 순수한데, 그만큼 더 슬픈 결과로 돌아오게 됩니다. 졸업을 앞두고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는 시즈루에게서 사진 재능을 발견한 마코토는 그녀에게 사진 콩쿠르에 응모해보자고 합니다. 마코토와 공유하던 취미가 재능이 된 시즈루는 콩쿠르 사진을 위해 마코토에게 뜬금없는 부탁을 하는데요. 자신과 키스하는 사진을 공모전에 제출하고 싶다고 합니다. 고민하던 마코토는 그 부탁을 들어주고, 영화의 포스터에도 있는 그 유명한 장면이 탄생하죠. 이 사진을 찍던 중, 마코토는 안경을 벗은 시즈루의 모습을 처음 보게 되고 설렘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사진을 찍고 시즈루는 학교를 자퇴하고 사라집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났을 때, 연락이 안 되던 시즈루에게서 마코토는 편지를 받습니다. 뉴욕에서 열리는 자신의 사진전에 와달라는 초대장이었죠. 마코토는 설렌 마음을 안고서 뉴욕으로 갑니다. 시즈루와 만날 것을 기대하던 마코토. 하지만 그의 앞에 등장한 건, 시즈루가 아닌 미유키였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죠. 시즈루는 죽었다는 걸. 시즈루는 성장하면 죽는 병을 앓고 있었고, 그래서 밀가루 도넛만 먹으며 성장을 억제해 왔던 거였습니다.


하지만, 마코토를 사랑한 시즈루는 어린 소녀가 아닌, 여자로서 마코토에게 인정받고 싶어 성장, 그러니까 죽음을 선택했던 겁니다. 시즈루의 전시회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건, 숙녀가 되어 마코토를 바라보는 시즈루의 사진과 마코토와 키스를 했던 순간을 담은 사진이었죠. 그제야 마코토는 시즈루의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 알게 됩니다.



Scene by Scene #1 마코토의 사진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는 카메라와 사진을 통해 마코토와 시즈루가 이어지고, 특별한 순간을 기록하는 영화입니다. 그래서 사진이라는 것의 특성이 이들의 사랑과 닮은 면이 많죠. 둘의 사랑을 ‘필름 현상’ 작업에 비유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필름 카메라는 찍는다고 해서 바로 사진을 볼 수 있는 건 아니죠. 어둠 속에서 작업을 거친 뒤에야 셔터를 눌렀던 그때, 어떤 사진이 찍혔는지 알 수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에는 찍는 즉시 바로 볼 수 있지만, 필름엔 그런 특징이 있었습니다.


이런 현상 과정은 마코토의 심리와 유사합니다. 마코토는 시즈루와 함께 했던 순간에는 그녀의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시즈루가 세상에 없다는 걸 알고서야, 그녀와 함께했던 그 순간이 사랑이라는 걸 알았죠. 사진이 어둠을 거쳐서 뚜렷한 모습을 보여주듯, 두 사람의 사랑도 어둠, 그러니까 이별과 죽음의 과정을 거쳐 뚜렷하게 이어집니다. 애절한 설정이네요.


그리고 마코토는 주로 풍경을 찍습니다. 사람보다는 자연이라는 공간 그 자체를 담죠. 그의 사진엔 사람과 그들의 감정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런 그의 사진 중, 희귀한 사진은 바로, 시즈루가 찍힌 사진입니다. 시즈루가 건널목을 건너기 전의 모습이었죠.



풍경만 찍던 마코토가 시즈루를 담았다는 건 여러 관점에서 볼 수 있는데요. 하나는 시즈루가 마코토에게 처음부터 특별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시즈루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지만, 이미 만난 순간부터 그녀에게 카메라 셔터를 열 듯, 마음을 열었던 거죠. 마코토도 시즈루에게 관심이 있었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반대로 마코토가 늘 풍경을 찍듯, 시즈루라는 사람을 무심히 풍경처럼 바라봤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시즈루라는 사람을 그저 하나의 배경처럼 생각한 거죠. 이렇게 바라보면, 조금 더 슬퍼지는 장면이 있습니다. 시즈루가 자신이 찍힌 사진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장면이 있었죠. 시즈루는 이 사진에서 어떤 의미를 찾았을 것입니다. 자신이 마코토에게 특별한 사람이라고 말이죠. 만약, 마코토가 무심히 이 사진을 찍었다면, 시즈루의 그 미소가 착각이었다는 게 되어버리니, 더 슬플 것 같습니다.     



Scene by Scene #2 건너지 말았어야 할 경계

영화의 후반부에, 시즈루가 얼마나 자주 죽음을 암시했는지 알려주는 회상 장면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죽음이라는 복선이 무심히 자주 등장했고, 그래서 더 충격적입니다. 시즈루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난 곧 죽을지도 몰라’라는 암시이자 외침이었지만, 마코토는 그걸 전혀 몰랐던 거죠. 그래서 더 가슴이 아픕니다. 자기 죽음을 알아봐 달라는 외침이었으니 말이죠.

     

그리고 영화가 은밀히 알려준 죽음이란 이미지도 있습니다. 우선, 횡단보도를 건너는 이 장면을 말하고 싶네요. 시즈루는 마코토가 아니었다면, 이 도로를 건너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코토를 만나지 못했다면,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겠죠. 이는 마코토를 만나지 않았다면 성장하지 않고 소녀인 상태로 있었을 것이란 걸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 될 수 있습니다. 시즈루는 횡단보도를 건너며,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를 넘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앞서 말한 시즈루가 찍힌 사진이 굉장히 의미있는 사진이 될 수 있겠네요.     


그리고 또 하나 상징적인 곳이 있는데요. 마코토의 비밀장소로 가는 길엔 닫힌 문이 있었습니다. 거기엔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있었죠. 시즈루는 이 경계를 넘고, 마코토의 공간으로 들어갑니다. 그 덕에 사랑을 알았고, 나중에 마코토와 키스까지 하게 됩니다. 이 키스도 하나의 선을 넘은 거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정이랑 경계를 넘어 사랑으로 다가갔으니까요.     


Scene by Scene #3 변하는 계절을 담은 영화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는 영화가 끝난 뒤에 마코토와 시즈루의 첫 키스가 있었던 그 공간이 특히 오래 기억에 남는 영화입니다. 그 공간의 녹색 이미지 덕에 여름이란 계절이 기억에 강렬하게 남는 영화죠. 이번엔 이 계절에 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이 영화는 계절의 순환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계절의 변화는 두 사람의 관계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영화의 첫 시작은 마코토의 현재로 시작하는 겨울이었죠.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대사가 들리는 12월이었습니다. 거기서 영화는 시즈루와의 만남이 있던 과거로 갑니다. 그들이 만난 건 입학식이 있는 4월의 봄이었죠. 봄에 시즈루는 마코토를 만났고,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봄이라는 계절은 새로운 만남과 생명이 깨어나는 것과 연관이 있는 계절이죠. 그 이후 영화의 대부분은 여름에 진행되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배경에서 녹색 식물이 두드러지죠. 이 시간은 두 사람의 감정이 쌓여가는 생명력 넘치는 계절입니다. 그리고 시즈루가 건강했듯, 활기가 넘치는 게 여름이란 계절과 잘 어울리죠.     



그리고 영화는 다시 현재로 돌아와 겨울이 됩니다. 여기서 마코토는 시즈루의 죽음을 알고, 두 사람은 결국 만나지 못한 채 영영 이별하게 되죠. 겨울은 무언가 끝나는 계절이고, 그래서 시즈루의 죽음, 혹은 마코토와 시즈루의 이별을 표현하기에 어울리는 계절입니다. 끝일 것만 같던 장면 뒤엔, 시즈루의 편지를 받는 마코토의 모습이 다시 나오는데, 벚꽃이 떨어지는 걸 봐서는 봄으로 보입니다. 마코토는 시즈루와의 사랑을 혼자서라도 새로 시작하려 하죠. 역시나 ‘시작’이란 설정이 봄이라는 계절과 어울립니다.     


이렇게 영화엔 계절의 순환이 두 사람의 관계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가을은 없는 걸까요? 계절의 순환을 담았음에도, 가을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 계절이 없는 이유를 추측해야 하는데, 가을이 결실의 계절이란 걸 생각해보면 될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싹트고, 감정을 키워갔지만, 결국 두 사람은 진짜로 이뤄지지는 못했죠. 둘의 마음은 끝까지 엇갈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두 사람의 사랑엔 결실이 없었기에, 가을을 무대로 할 수 없던 게 아니었을까요.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는 시즈루의 순애보가 아름답게 그려지는 영화이지만, 결국은 엇갈린 사랑의 슬픔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끝내, 가슴이 절절해지는 안타까운 영화죠. 그리고 사진이라는 것에 관해 더 생각하게 되는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사진을 찍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듯, 사람의 마음, 사랑도 그 자리에서 바로 볼 수 있는 시대일까요? 디지털카메라 시대의 사랑이란 무엇인지 문득 궁금해지는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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