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읽남의 벌책부록 - 유전
로튼 토마토 100%를 자랑하는 <유전>이 관객을 찾아왔습니다. 영화에 쏟아진 평으로는 ‘욕 나오게 무섭다’, ‘무섭지 않은 장면이 단 1분도 없다’, ‘충격적으로 무섭다.’ 등이 있었죠. 그리고 번역을 맡은 황석희 번역가가 남긴 말도 화제가 되었는데요. 직접 관람하고 나서야 왜 이런 말이 나오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올여름, 엄청난 공포를 선물할 <유전>의 세 가지 관람 포인트를 살펴보겠습니다.
호러 영화가 관객을 놀라게 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화면의 빈틈에서 갑자기 귀신이 등장하거나, 피가 튀고 끔찍한 소리를 활용해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방법 등이 있죠. 당연히 <유전>에도 이런 호러 영화의 연출이 활용됩니다. 단, <유전>만의 특징이라면 깜짝 놀래주는 장면보다는 불편한 분위기로 공포감을 조성한다는 데 있습니다.
영화 속 카메라는 느리게 움직이며 관객이 공간을 오래 응시하게 합니다. 뭔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불길한 공간을 오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관객은 불안함을 느껴야 하죠. <유전>은 서서히 영화 속 공간의 공기를 느끼게 하고, 관객을 얼어붙게 합니다. 그래서 모든 순간이 짜증 날 정도로 초조하고, 매우 일상적인 장면조차 무섭게 다가오죠. 만약, 이런 분위기에 몰입하지 못한다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앞서 말한 공포감을 조성하는 방법과 연장선에 있는 내용인데요. <유전>은 굉장히 불안한 느낌의 음악이 영화를 계속 채우고 있습니다. 심장박동 소리처럼 쿵쾅거리고 반복되는 음악이 계속해서 위험을 암시하고, 관객에게 한숨 돌릴 여유를 주지 않습니다. 깜짝 놀라게 하는 장면은 적다고 했지만, 욕 나오게 하는 소리는 많이 있습니다. 영화 속 인물의 시그니쳐 같은 소리가 있는데, 굉장히 일상적인 소리지만 영화가 끝난 뒤엔, 당분간 듣기 싫을 정도로 소름 끼치는 소리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앞서 말한 모든 요소보다 이 영화를 미치도록 무섭게 하는 건 배우의 연기입니다. 딸 역할을 맡은 ‘밀리 샤피로’의 연기는 바라보기 힘들 정도로 섬뜩합니다. 그녀는 무심한 표정으로 스크린 전체를 공포로 물들이는데, 그녀가 등장하는 모든 장면이 불안하고 소름 끼칩니다.
정신병을 가진 엄마를 연기한 ‘토니 콜렛’의 광기 어린 연기도 살벌합니다. 기이한 현상과 현실의 중간에서 발버둥 치고, 갑작스레 분노를 토해내기도 하는데요. 그녀는 뭔가를 저지를 것 같은 두려움을 주는 동시에, 영화의 이야기를 더 미궁으로 빠지게 합니다. 감정 변화가 큰 그녀는 앞선 기이한 분위기와 더해져 최고의 공포를 만들어 냅니다.
신경증을 앓는 인물과 그녀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기이한 공기의 정체는 대체 뭘까요. 이런 독특한 분위기는 영화의 중심 소재와 관련이 있는데, 영화가 전개되면서 조금씩 퍼즐이 맞춰지며 거대한 공포로 돌아오게 됩니다. 스티븐 킹의 걸작 호러 소설들이 연상되기도 하죠. 공포를 이겨낼 용기가 있다면, 그리고 무섭다 못해 짜증까지 나는 초조함을 견딜 수 있다면,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좋은 피서 선물이 될 영화입니다.